매거진 당신에게

효과 있을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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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어제 투베로사에 열탕 처리를 한 이야기를 썼다. 그래놓고 나는 하루종일 전전긍긍, 얘네가 혹시 좀 살아나는가를 오며 가며 뚫어지게 바라봤다. 시드는 것도 다시 생생해지는 것도 몇 분 사이에 일어날 일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조바심을 이기지 못하고 몇 번이나 꽃병 앞에 서서 뚫어지게 녀석들을 노려보거나, 시들어 축 처진 잎사귀를 손가락 끝으로 들어보거나 하며 안절부절못했다. 그렇게까지 했으니 시간을 되감는 마법이라도 일어나는 것처럼 시들어버린 꽃이 원래대로 멀쩡하게 돌아가길 기대하면서.


그리고 만 하루가 지난 지금. 하나의 결론이 내려졌다. 열탕법은 분명 물내림이 있는 꽃에게 좋은 처치법이기는 하지만, 이미 시들어버린 꽃을 되살리지는 못하는 것 같다. 추측형으로 쓴 이유는 내가 전문가가 아니며, 내가 또 뭔가 잘못된 방법으로 열탕 처리를 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꽃집 사장님이 알려주신 대로, 끝부분을 자른 꽃대를 끓인 물이 20여 초간 담갔다가 바로 찬물에 옮기는 식의 열탕 처리를 했고 그 결과 연방이라도 시들어 다 처져버릴 듯하던 투베로사의 시간을 그 순간에 잡아놓는 데는 성공했다. 1년 남짓 이런저런 꽃을 꽃병에 꽂아본 얄팍한 경험으로나마 녀석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지만 녀석은 거기서 더 시들지는 않고 하루를 갔다. 그게 아마 어제 한 열탕 처리 덕분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한번 시들어버린 꽃은 다시 생생해지진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사온 그날 좀 귀찮더라도 열탕 처리 해놓을 걸 하는 생각에 나는 못내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하긴 그렇다.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만드는 방법이라는 게, 꽃병에 꽂힌 꽃 같은 것 말고 그보다 더 사소한 것에라도 가능하긴 한지. 기껏 생각나는 것이 지우개나 화이트 같은 것들 뿐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 또한 하나는 종이를 일정 부분 긁어내는 것이고 하나는 이미 쓰여진 글자 위를 덮어 가리는 것뿐이니 정말로 일어난 일을 일어나지 않은 걸로 되돌리는 건 아닌 셈이다. 그런 건 인간이 만든 일부 프로그램 속에서 ctrl+z라는 지극히 한정적인 단축키로나 가능할 뿐 역시 신의 섭리는 아닌 모양이다. 애초에 그런 게 가능했다면 나는 아마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짓을 해서라도 그를 다시 데려왔을 것이며 어떤 식으로든 내 곁에서 떠나가지 못하게 했을 테다. 그런 게 가능하지 않으니까 그가 떠나간 1년 3개월의 시간을, 나는 이렇게 온갖 청승을 떨면서도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니겠는지.


살면서 겪는 모든 일은 기본적으로 불가역(不可逆)이다. 두 번 세 번 후회하지 말고 한 번 겪을 때 제대로 겪자고 생각해 보지만, 그게 과연 얼마나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미욱한 인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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