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텔레비전을 보든 보지 않든 켜놓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때가 있었다. 조용하게 가라앉은 집안이 너무나 견디기 힘들어서였다. 심지어 잘 때조차도 마찬가지였다. 이 집 안에 살아있는 것이 나 하나뿐이라는 적막감은 차라리 절망에 가까웠다. 그래서 그토록이나 싫어하던 보험광고조차도 꾹 참고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지냈었다. 그러던 것이 요즘은 조금 나아져서, 가끔 하는 일에 방해가 되거나 할 때는 텔레비전을 잠시 꺼두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중에도 도저히 텔레비전을 틀어놓지 않고는 못 버티는 시간이 있는데, 밥 먹을 때가 그렇다. 밥 먹을 때의 적막은 아직까지도 도통 적응이 되지 않는다. 밥 먹을 때만큼은 음악 같은 걸로도 힘들고, 꼭 사람의 목소리가 있어야만 해서 하다 못해 '짱구는 못 말려'라도 틀어놔야만 밥을 먹을 수 있다.
어제도 대충 그런 이유로, 밥을 먹으며 틀어놓을 만한 채널을 찾고 있었다. 별로 틀어놓을 만한 곳이 없었고, 그래서 한 토크쇼 프로그램에 채널을 멈추었다. 그날의 패널들은 아마 '사랑꾼'으로 유명한 사람들인 것 같았는데, 그중 한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
오늘이 이 세상 마지막 날이라면 과연 아내와 싸울까요?
나는 잠시 멈칫했다. 그 생각은 내가 뒤늦게나마 거의 매일 하는 생각이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나는 그 후회를 단 하루도 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그날이 마지막인 줄 알았더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혹은, 그날이 마지막인 줄 알았더라면 그렇게 했을 텐데 하는, 이제는 아무리 후회해 봤자 소용없는 그런 생각들. 그리고 그 말을 한 그 연예인의 얼굴이 조금 달리 보였다. 미리부터 저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저 사람은 정말로 내가 지금 하는 후회 같은 건 영영 하지 않고 살겠구나 하고.
그러나 다른 패널들은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대개의 반응은 부부싸움 한 번을 피하기 위해 그런 생각까지 해야 되느냐는 거였고 그냥 한 번 싸우고 말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고 대본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한 번 금이 가버린 내 마음에는 그 반응들이 더없이 서글프고 씁쓸하게만 보였다. 직접 당해봐요. 그런 말들이 나오나. 나는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주말 저녁 7시쯤에 한 채널에서는 오래전에 유행했던 개그 콘서트의 '달인' 코너만을 묶어서 한 시간 정도 재방송을 해준다. 시차가 나기 때문에 올드한 맛은 있지만, 그래도 지금 봐도 재밌어서 늘 보면서 웃곤 한다. 거기 자주 나오는 대사 한 마디로 오늘의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마지막인 줄 모르고 대충 보내봤어요?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아주 두고두고 쓰라립니다,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