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초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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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며칠 전에, 찌개를 끓일 때 다소 손 많이 가고 귀찮아서 그렇지 한 번 끓여놓으면 세 끼는 넉넉하게 먹는다 운운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물론 그 찌개를 3일 연속 달아서 먹지까진 않긴 하지만, 어제는 내가 짜놓은 일정상 그 찌개를 한 번 끓여서 반절은 덜어서 먹고 반절은 마지막 한 끼를 위해 남겨두어야만 하는 그런 타이밍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식단에 아무런 이의도 유감도 없었다. 어제가 초복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그랬다.


메일확인 겸 늘 들어가는 포털사이트의 로고가 알록달록하게 바뀌어 있기에 오늘은 또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봤더니 초복이란다. 아, 벌써 날짜가 그렇게 됐나 하고 생각하니 지금은 7월 중순이고, 어느 모로 보냐 훌륭한 한여름이다. 축축 처지는 몸의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보양식을 찾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시기였다. 그러니 이맘때쯤 초복이 들어있다고 해서 그걸로 트집을 잡을 까닭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복날에 먹는 닭요리에 진심이었다. 본인은 닭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으면서도 그랬다. 그래서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복날의 날짜들을 전부 체크해 두고 어느 복날엔 무슨 닭요리를 먹을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일종의 전통이었다. 한 번은 무조건 삼계탕이었다. 삼계탕은 그보다 훨씬 어린애 입맛인 내가 거의 유일하게 그보다 좋아하는 '어른 음식'이었다. 그래놓고 나머지 두 번은 초계국수를 먹을 건지 찜닭을 먹을 건지 닭갈비를 먹을 건지 닭도리탕을 먹을 건지, 이도저도 아니면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닭요리를 먹을 건지를 두고 내내 고심해서 장을 봤다. 그리고 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고 그의 그런 고민의 결과물을 맛있게 받아먹기만 하면 됐다. 그게 재작년까지의 일이다. 그리고 올해로 2년째, 나는 그 누구도 나를 위해 오늘이 복날인데 삼계탕이라도 먹었느냐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복날을 지나가고 있다.


어제 찌개를 먹기로 되어 있었던 건 냉장고에 처박는 것이 만능은 아니며, 특히나 국물음식의 경우에는 중간에 한 번 끓여주어야 상하지 않기 때문인 것도 있었다. 그래서 기껏 짜놓은 일정을 바꿀 수는 없어서, 나는 원래 생각대로 그냥 끓여놓았던 순두부찌개에 밥을 먹었다. 그러나 결국 이렇게 지나가기는 못내 아쉬워서, 오후쯤 집 근처 패스트푸드 점에 가서 만원 남짓 하는 순살치킨 하프팩을 사 와서 간식 겸 먹는 걸로 복달임을 때웠다. 어쨌든 이것도 닭은 닭이니까, 복날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정도는 갖춘 셈이라고 그에게 변명하면서.


그러고 보니 이 사람은 거기서, 복이라고 닭 비슷한 거라도 한 마리 먹긴 했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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