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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또, 쿡방이 미친 듯이 유행하던 시기가 있었다. 채널마다 경쟁이 붙어서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으면서도 요리 잘하고, 잘생기고, 입담 좋은 쉐프들을 찾아서 카메라 앞으로 데려오는 데 혈안이 되어 있던 것 같았던 그런 시기가. 나중엔 솔직히 좀 식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방송에서 많은 레시피와 요리하는 팁을 얻어 들었고, 그 결과로 나는 더 맛있는 음식들을 먹을 수 있게 되긴 했다.
그때 알게 된 여러 쉐프들 중에 한 중화음식 하시는 분이 있다.
그는 그냥 오며 가며 마주치는 동네 아저씨 같은 느낌을 주는 이 분의 레시피를 좋아했다. 이것저것 해서 나한테 먹여보면 내가 제일 잘 먹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방송에 나와서, 이렇게 영업비밀 다 알려주셔도 괜찮냐는 질문에 안다고 다 따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고 무심하게 대답하던 그 애티튜드도 어딘가 대가답고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2년 전인지 3년 전인지, 그와 나는 급기야 이 분의 업장에 직접 가서 음식을 먹어보기로 했었다.
이 분의 식당은 요즘은 개나 소나 다 하는 온라인 예약 같은 것도 받지 않고 오로지 전화 예약만 가능해서 한 달치 예약을 받는 월초에는 전화 통화가 안 되기가 십상이라고 인터넷 여기저기에 원성이 자자했다. 그러니까 아이돌 좋아하는 팬들이 콘서트 티켓을 예매할 때 하는 그 '피켓팅'을 해야 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요행히 우리는 그리 어렵지 않게(단번은 아니었다) 자리 하나를 예약하는 데 성공했고, 서울까지 가는 무리수를 둬 가며 그 식당에 방문해서 탄탄면과 멘보샤, 탕수육을 먹고 왔다. 그와 나는 탄탄면을 좋아했고 꽤 이곳저곳의 탄탄면을 먹어보고 다녔지만 그 식당의 탄탄면이 제일 맛있었다. 역시 참. 대가는 대가다. 음식을 다 먹고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그와 나는 그렇게 한참이나 고개를 끄덕거렸다.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그냥' 짜장면과 '그냥' 볶음밥을 먹어보지 못한 거라고 그는 말했다. 중국집이 얼마나 음식을 잘하는가 하는 건 결국 거기서 결판이 나게 마련이라고. 그런데 힘들게 예약씩이나 해서, 여기까지 와서 짜장면이나 볶음밥을 사 먹고 가는 것도 뻘짓이니 어쩌겠냐고. 다음번에,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오게 된다면 그때는 눈 딱 감고 짜장면이랑 볶음밥을 먹자고, 그와 나는 그렇게 약속했다.
그리고 물론, 이제 그 약속은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어제 채널을 돌리다가, 나는 그 쉐프 분이 출연하는 다른 방송을 보았다. 그 1년 사이 내 곁에 있던 사람은 떠나고 없는데 그분이 출연하는 방송은 여전했다. 새삼 스산한 기분이 들어서, 나는 나와는 일면식도 없는 텔레비전에 비친 그분의 얼굴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물어라도 보고 싶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에 오게 되면 짜장면과 볶음밥을 먹어보자고 했던 그 약속을 기억이나 하고 있는지. 그리고 나한테 눈곱만큼이라도 미안하긴 한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