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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어제 아침에 일어나 아침 정리를 하고, 운동을 하고, 자리에 앉아 브런치에 글 한쪽을 쓸 때까지만 해도 봉안당에 갔다 올 계획까지는 없었다. 창 밖엔 비가 추적추적 오고, 그게 아니라도 나가서 싸돌아다니기 좋아 보이는 날씨는 아니었다. 그냥 얌전히 집에 처박힌 채 하던 일이나 끝내놓고 오후의 망중한을 즐기면 딱 맞을 날씨였다.
그러나 어제 브런치에 그 유명 쉐프의 짜장면 이야기를 쓰다가, 나는 문득 이 사람이 보고 싶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브런치에 글을 다 써놓고, 부랴부랴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세수를 하고, 옷이나 갈아입는 정도였는데도 그 사이 빗발은 많이 굵어져 있었다. 만만치 않은 길이 될 것임을 예상했다. 그래도 어떡해. 여자가 한 번 칼을 뽑았으면 썩은 호박이라도 잘라야 맞지. 그런 한 마디를 그의 사진 액자를 향해 남기고, 나는 창문을 닫고 혹시나 그 서슬에 백합들이 더워서 떠 죽을까 봐 선풍기까지 틀어놓아 주고는 집을 나섰다.
작년 1년간 그의 봉안당에 다니면서 내가 날씨로 된통 고생한 기억은 딱 한 번뿐이다. 그때도 장마철이었고 비가 옴팡지게 내리던 날이었다. 그날 하루 외에는, 나는 한 번도 날씨 때문에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 크게 고생한 기억이 없다. 여름에 더운 거야 어쩔 수 없고, 겨울에 길에 눈이 쌓인 것도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그러나 여름치고는 날이 그렇게까지 덥지 않았고 겨울치고는 새로 눈이 펑펑 내리는 일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돌아오는 길에, 참 거기 가서도 나 고생하지 말라고 욕본다는 귀먹은 공치사를 하곤 했다.
그러나 어제는 좀 얘기가 달랐다. 작년만 해도 내가 봉안당에 가는 날은 대개 정해져 있었다. 매달 초 한 번, 그 외에는 우리끼리 챙기던 기념일 정도. 그래서 그도 아마 그 날짜에 맞춰서, 오늘은 사람이 밖에 나가야 하니 인간적으로 구름 좀 끼게 해줍시다 라든가, 눈은 좀 참았다가 내일 옵시다 라든가 하는 식의 '딜'이 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제처럼 갑작스럽게, 불쑥 가겠다고 나서는 데야 그도 아마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덕분에 비는 내가 나가 있는 내내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이 내렸고, 그래서 나는 어제도 작년 그날처럼, 신고 나간 신발과 바지를 몽땅 버린 꼴을 하고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게 왜 일정에도 없는 짓을 해서 이 고생을 사서 하냐고 그는 말하겠지만 그에 대해 내가 할 대답은 정해져 있다. 인생은 실전이고, 원래 서프라이즈란 그런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