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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반 정도, 그의 책상에 꽃을 꽂아놓기를 계속하고 있다. 처음엔 분명히 그를 위한 작은 의식이었는데 이제는 하나의 루틴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은 아무래도 망설여지는 참에 집안에 꽃을 두는 것은 매우 추천할만하다는 상담 선생님의 말씀도 있는 참이기도 하다.(반려동물의 경우는, 그의 대용품으로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지는 않다는 내 말에 상담 선생님께서는 그건 꼭 그렇게만 생각할 일은 아니라고 하셨다. 슬픈 일을 겪은 사람에게는 아무리 애를 써도 마음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순간이 오는데 그 타이밍에 반려동물이 있다면 그 녀석들이 그런 순간을 버티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시작하게 된 계기가 슬픈 것은 좀 안타까운 일이지만 꽃을 산다는 건 참 즐겁고 좋은 일이다. 일단 꽃을 사러 가서 이 많은 예쁜 꽃들 중 무엇을 사 가서 꽂아놓을까를 고민하는 그 순간이 즐겁기 때문이다. 꽃들의 색깔과 향기는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들어놓은 그 무엇과는 역시 달라서 잠시나마 내가 처해 있는 슬픔을 잊게 해 준다. 그렇게 꽃을 사 와서 꽃대를 손질해 병에 꽂고 그의 책상에 갖다 놓고 누구더러 들으라는 건지 모를 커다란 목소리로 이 꽃의 이름은 무엇이고, 꽃말은 무엇이고, 예쁘지? 하고 혼잣말을 하는 그 순간까지 내게는 작은 위안이 된다.
얼마 전 글에도 썼던 리시안셔스가 시들고 그다음 사다 놓았던 꽃은 자주색 소국이었다. 원래는 라벤더를 사 올까 했으나 어째 본의 아니게 너무 푸르거나 보라색이 나는 꽃만 사다 놓는 것 같아 좀 빨간 꽃을 사다 놓고 싶어 소국을 샀다. 그 무렵 들은 어느 배우님의 '마당의 빨간 꽃' 이야기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국은 다른 꽃들과는 조금 다르게 시드는 티가 별로 많이 나지 않았다. 색깔이 다른 꽃들에 비해 짙어서 내 눈에 잘 띄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사다 놓은 지 일주일쯤이 지난 어느 날 밤, 나는 소국의 이파리가 바깥에서부터 시들어가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꽃병의 꽃이 빨리 시드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 수관이 막혀서 물을 잘 먹지 못해 그런 경우도 있다고, 그런 경우엔 팔팔 끓인 물에 꽃대의 끝 부분을 30초 정도만 담가 두면 막혔던 수관이 뚫려 꽃이 다시 생생해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던 것이 기억났다. 야밤에 부랴부랴 주전자에 물을 끓여 꽃대를 담갔다가 얼음물에 다시 꽂기까지 해 봤지만 한 번 시든 꽃은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어차피 마트가 문을 열면 나가서 꽃을 사 와 다시 꽂아놓을 생각이니 시든 수국은 미리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꽃병을 치우고 간단히 집안 청소를 하고 돌아왔을 때, 나는 순식간에 너무나 텅 빈 듯한 집안 풍경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사다 놓는 꽃은 늘 딱 3천 원어치, 한 줌 남짓이었다. 그 몇 송이 안 되는 꽃들의 색깔이, 자태가, 향기가 그렇게까지 대단했을 리가 없는데도 그 꽃들이 사라져 버린 순간 마치 우리 집은 모든 색깔을 빼앗긴 흑백으로 되돌아가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그 얼마 안 되는 꽃들의 존재감이 그렇게나 큰 줄 나는 미처 몰랐다. 한 달 정도 그 자리에 있던 꽃병이 사라져 버린 그 순간의 공백은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그래서 나는 열 일을 미뤄 두고 마트가 문을 여는 아홉 시가 채 되기도 전에 황황히 집을 나가 새 꽃들을 사 와서 꽃병에 꽂았다.
기껏 꽃 한 줌 사다 꽂아놓는 꽃병 하나가 있다 없어져도 사람은 순식간에 이렇게까지 외로워지는구나.
그러니 지금 내가 슬픈 건 지극히 당연한 것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