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우제 지내던 날 그의 영전에 갖다 놓기 위해 꽃을 사러 갔다가 다육이 하나를 얻어온 이야기를 이미 쓴 적이 있다. 마침 집에 딱 맞는 사이즈의 화분이 있어서 어설프게 분갈이까지 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꽃집에 다시 들고 갔다가 이 정도면 초보자 치고는 잘하셨다는 말을 들었다는 것까지.
서점에 갔다가 제목만 보고 웃음이 터졌던 책 중에 '식물 저승사자'라는 책이 있다. 무슨 내용인지, 어떤 사람들을 위한 책인지 제목만 봐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키우다가 죽여버린 화분은 총 세 개다. 이 정도로는 식물 저승사자의 반열까지는 무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하나하나의 기억들이 너무나 뚜렷하게 새겨져 있어 나는 다시는 화분을 집에 들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첫 번째는 무려 제주도에서 사 가지고 온 풍란이었다. 정말 몇 달을 애지중지하면서 키웠는데, 느닷없이 집에 수도가 터져 그 공사를 하느라 며칠 집을 비웠다가 돌아가 보니 이미 처참하게 말라죽어버린 후였다. 두 번째는 레몬타임이었다. 집이 너무 삭막한 것 같아 뭔가 푸릇푸릇한 게 하나 있었으면 해서 집 앞 꽃집에서 샀던 화분이었다. 나름 잘 크고 있었는데, 허브가 웃자라면 윗부분의 생장점을 잘라주는 게 좋다는 인터넷의 글을 믿고 윗부분을 잘라준 후로 급격히 시들시들해지더니 결국은 말라죽고 말았다. 그리고 세 번째가 예의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결국은 죽어버린 다육이였다. 이런 기억들이 있어서, 비록 내 의지로 데려온 것은 아니지만 이 손바닥만 한 화분이 또 내 손에서 죽어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문제는 이 공허한 하루하루 중에도 은근히 마음이 쓰이는 지점이었다.
물은 한 달에 한 번만 준다는 기분으로. 다육이는 물을 너무 자주 주는 것보다는 차라리 너무 적게 주는 편이 낫다. 나는 꽃집 직원 분의 그 말 한마디만을 믿기로 했다. 처음 데려온 후 분갈이를 하고 나흘인지 지난 후에 한 번을 주고 5월 중순쯤에 한 번을 줬으니 집으로 데려온 지 한 달 반 남짓 동안 두 번의 물을 준 셈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고, 그래도 우리 집에서 제일 볕이 잘 드는 창가에 갖다 놓고 저녁이 되면 방 안으로 들여놓기를 매일같이 하고 있는 중이다. 잘 크고 있긴 한 건지, 이 녀석도 앞전의 다육이처럼 죽는 거 아닌지 하는 생각에 창가에 옮겨놓고 한참을 들여다보지만 아직 육안상으로 큰 변화는 없었다.
그러다가 며칠 전, 나는 다육이의 아랫부분에 이파리 두어 개가 보기 흉하게 말라 있는 것을 발견했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부터는 별의별 생각들이 가지에 가지를 치고 뻗어나갔다. 물을 너무 안 준 건가. 아니면 역시 분갈이가 잘못된 건가. 영양제 같은 걸 줘야 하나. 나 같은 '식물 저승사자'의 손에서 한 달 반이나 버텼으면 오래 버틴 거지. 내 딴에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역시 뭔가 부족했던 건가. 그런 생각들에 오전 내도록 입맛이 썼다.
혹시나 방법이 있을까 해서 다시 인터넷을 검색해 보았다. 조금 더 큰 화분으로 분갈이하고 영양제 같은 것도 주면 살아나지 않을까. 그러나 그렇게 검색한 블로그 몇 군데에서 '식물 금손'님들의 글을 보고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육이의 아랫부분의 잎이 말라 시드는 현상을 '하엽 진다'라고 한단다. 다육이가 하엽이 지는 이유는 물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빛이 모자라서이고, 실내에서 키우는 다육이들에게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며, 옥상 등 볕이 잘 드는 곳에 갖다 두면 단박에 해결되는 일이라고 한다. 하엽이 지는 건 나름 빛이 모자란 환경에서 그에 적응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그러니 하엽이 진다고 물 주는 양을 늘리거나 물을 자주 주면 뿌리가 썩게 되니 조심하라는 말들이 있었다.
그 글을 읽고 나서 나는 창가에 내다 놓은 그 손바닥만 한 식물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이 어설픈 사람의 손에 겨우 한 달에 한 번 물을 얻어마시는 게 고작이면서도, 그래도 살겠다고 스스로의 이파리까지 몇 개 포기해가며 애를 쓰고 있는 그 생명을. 그러고 보니 속부분에 새로 돋아난 잎사귀들이 조금 통통해지고 자란 것 같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