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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샤워를 하러 들어간 그가 한 시간이 넘도록 나오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러면 그날은 욕실을 청소하는 날이었다. 천성이 꼼꼼한 그는 한번 욕실을 치우기 시작하면 곳곳의 물때는 물론이고 타일 사이사이에 낀 얼룩까지, 그야말로 바닥에 떨어진 밥풀도 주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티끌 하나 남아 있지 않을 만큼 깨끗하게 치워놓고 나오곤 했다. 가끔은 너무 용을 썼더니 머리가 팽 돈다며 문지방에 주저앉아 찬물 한 잔만 떠다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정도로 그는 열심히 욕실을 치웠다. 심지어 그가 떠난 지 며칠 후, 나는 배수구에 엉켜있을 머리카락이나 좀 치우려고 욕실 배수구를 들어냈다가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엉켜있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어버린 일도 있었다. 그는 참, 마지막까지도 그렇게나 깔끔했던 사람이었다.
며칠 전 나는 전동 솔을 샀다. 이젠 늘 그의 몫이었던 욕실 청소도 내가 해야 할 일이었고, 나는 도저히 그가 하듯 깨끗하게 욕실을 치울 자신이 없어서 문명의 이기를 좀 빌어 보고자 하는 잔꽤였다. 솔을 받던 날 테스트 겸 세면대를 한 번 닦아 보았다. 안에 끼어있던 물때가 생각보다 제법 잘 벗겨졌다. 신기하다. 일단 그날은 그 정도의 소감이 전부였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그 전동 솔을 들고 본격적으로 욕실을 청소해 봤다. 별로 힘을 들이지 않았는데도 타일 사이사이에 낀 거무스름한 얼룩들이며 물때들이 꽤 잘 닦여 나갔다. 마지막으로 샤워기를 틀어 물을 뿌리고 나니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할 만큼 깨끗해졌다. 좀 진작 살 걸 그랬다.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좀 진작 샀으면 오빠 욕실 치울 때 머리가 팽 돌만큼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아니, 그냥 내가 욕실 청소했어도 됐을 텐데. 내 일이 아니라고, 그에게 미뤄놓고 신경도 쓰지 않았던 나날들이 너무나 미안하고 아파서 또 한참을 울었다.
이런 순간은 의외로 잦다. 그가 마지막으로 사놓았던 대파를 다 먹고, 나는 새로 파 한 단을 샀다. 그는 대파를 사면 뿌리는 따로 잘라 육수 내는 데 썼고 이파리 끄트머리의 시든 부분은 잘라서 버린 후 남은 부분을 3등분해 종이 호일에 한 번 감싸고 비닐팩에 한 번 더 싸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파를 꺼내 쓸 때마다 감싼 종이 호일과 비닐팩을 갈았다. 그렇게 보관하는 파는 꽤 오랫동안 선도를 유지했다.
나는 그가 하듯 파뿌리를 잘라내고 끄트머리의 시든 부분은 잘라서 버린 후 어슷한 크기로 3등분 해 종이 호일에 싸고 비닐팩에 쌌다. 해 보니 별 것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내 곁에 있던 동안 나는 한 번도 파 다듬는 것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그런 걸 할 줄 몰랐고, 그건 늘 그가 하는 일이었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할 줄을 몰랐던 게 아니라 그냥 내가 무심해서였다는 것을.
가끔 생각한다. 어쩌면 그는 나의 무심함에 질려서, 너 어디 혼 좀 나 보라고 그렇게 말없이 떠나버린 게 아닐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