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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생각한다. 비고 눈이고, 안락한 내 집에 앉아 창밖으로 바라볼 때나 아름답고 낭만적인 것이라고. 당장 외근을 나가야 하는 날 내리는 비는 짜증을 유발할 뿐이며, 운전을 해야 하는 날 내리는 눈은 사고위험을 높일 뿐이다. 하늘에서 뭔가가 떨어지는 이 낭만적인 자연 현상은, 그러나 인간에게는 제 삶에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아야 그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그런 것일 뿐이다. 내가 딱히 삭막한 사람이라서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 것이다.
어제도 에어컨을 틀지 않고도 하루 지낼 만한 날씨여서, 그냥 창문이나 좀 열어놓고 잤다. 그리고 내려놓은 블라인드에 빗발이 들이치는 소리에 잡에서 깼다. 어느새 날은 밝아 밖은 환했고, 그냥 소리만 들어도 예사 비는 아닌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한참을 뒹굴거리다가, 나는 또 오늘 하루의 일정에 쫓겨 마지못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아침에 헤야 할 일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어제 오후쯤엔 간만에 하늘이 개여 하늘 비슷한 것도 조금 보이던데,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아침부터 만만찮은 비가 내리고 있다.
제목에 적은 이 오래된 노래는, 오늘은 또 무슨 이야기를 써볼까 하고 머리를 굴리던 중에 불쑥 생각났다. 내가 중학교도 들어가기 전, 아주아주 어릴 때 나왔던 것으로 기억되는 저 노래는, 아마도 내가 내 귀로 듣고 노래가 '좋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한 노래였던 것 같다. 그리고 어릴 때 좋아했던 것들이 대부분 그렇듯 저 노래도 가사를 제법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어서 잠시 놀랐다.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다. 사랑을 비에 비유하는 노래는 많다. 이루 다 떠오르지 않을 만큼 많다. 그러나 그 비는 대개 지금 나를 적시며 내리는 비이지 '창밖에' 내리는, 지금의 나와는 적당히 거리가 있는 그런 비는 아니다. 사랑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건 아마 이 노래뿐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무슨 뜻일까. 서두에도 썼듯이, 창밖에 내리는 비처럼 오고는 있지만 이제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그런 거라는 뜻일까. 그러고 보니 이 노래의 화자는 이미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졌다. '그대 떠나버린 걸 난 지금 후회 안'한다고 하니까. 아마도 이 노래의 화자는 '그 누구나 세월 가면 잊혀지는' 순간을 꽤나 많이 지나왔고, 그래서 지나간 사랑 따위는 '창밖에 내리는 빗물' 정도로 관조할 수 있을 만큼 어른이 된 모양이다.
내게도 떠나간 사람이 그저 창밖에 내리는 빗물이 되는 날이 올까. 언젠가 그런 날이 온다면, 그건 그것대로 서글픈 일일 것 같다. 오늘 창 밖을 뿌옇게 내리는 저 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