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6
그가 쉬고 있는 봉안당 입구에는 양 쪽으로 작은 가벽이 있고 수많은 메모가 붙어 있다. 모두가 이곳에 사랑하는 사람을 모셔놓은 사람들의 이루 다 못할 말들을 적은 보내지 못한 편지들이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그곳에 내 마음을 써놓고 온 적이 없다. 다 부질없다 싶은 마음이 들어서이기도 했고 어째서인지 종이 위에 실체가 남는 글씨로 뭔가를 쓸 엄두가 잘 나지 않기도 해서다.
어제는 간만에, 자판기에서 뽑은 캔 커피 하나를 마시는 핑계로 그 가벽 앞에 서서 어떤 메시지들이 붙어있는지를 좀 훑어보았다.
대번 나를 먹먹하게 한 것은, 생각보다 정말 많은 부모님들이 자식을 앞세우고 있구나 하는 사실이었다.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메모들도 더러 있었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먼저 간 아들 딸을 그리워하는 메모들이었다. 그리고 그 말투 또한 너무나 다정하고 살가워서 콧등이 찡해졌다. 사랑하는 아빠가, 혹은 엄마가 라는 말로 끝맺는 대부분의 메시지들이 그랬다. 먼저 간 자식이 웬만큼 나이를 먹었다면 그 부모님 또한 매우 고령이실 것이고, 그런 분들에게서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내용과 말투들이어서 이 분들의 떠나간 자식들이 기껏해야 2, 30대 정도가 아니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이제 겨우 다 키워서 제 할 짓을 하며 살겠거니 하고 잠시 품에서 떼어놓은 꽃 같은 자식이 이런저런 일로 당신들보다 먼저 가 버린 기분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그런 걸 생각하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를 보내놓고 딱 한 가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 것이 있다. 그가 내 아들이 아니고, 내가 그의 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와 나는 어쨌든 태어나 20년 이상 서로 모르고 살던 시간이 있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공유하고 모든 것을 같이 하던 사이였지만 어쨌든 내가 그를 이 세상에 만들어내진 않았다. 그 사실 하나만이 나에게는 자그마한 위로였다. 심지어 그렇기까지 했다면 나는 아마 정말로 이 순간까지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나는 입대했다가 사망한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10년 넘게 쓰고 계신 한 아버지의 사연을 듣고 한참을 울었다. 내가 이 세상에 내어놓고 내가 20년 이상 애지중지 키워왔을 존재가 나보다 먼저 사라져 버린 분들의 기록은 언제 어디서 읽어도 나를 먹먹하게 한다.
내일 아침엔 이 얘기를 써보면 어떨까 하고 핸드폰을 꺼냈다가, 그냥 사진을 찍지 않았다. 내 대수롭지 않은 글에 사진 한 장으로 이용되기에는 거기 적힌 마음들이 너무나 애달프고 무거워서. 잠시 그쳤던 장맛비가 또 시작된 아침에, 떠나간 모든 분들과 남아있는 모든 분들의 안녕을 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