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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떠나간 지 얼추 470일쯤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물건을 하나도 정리하지 못했다. 작년 봄 한참 마음을 잡지 못하고 점도 몇 군데 보러 다녔었는데, 그때 들은 이야기가 지금 당장 정리하는 게 무리면 조금 시간을 가지되 웬만하면 1년을 넘기지는 말라고 했었지만 나는 결국 그 말도 듣지 않고 있는 셈이다. 이젠 좀 정리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때마다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눈 질끈 감고 못 본 체하고 만다.
그러나 언젠가 그의 물건을 정리해 태우더라도 이건 절대 보내주면 안 되겠다 싶은 물건이 하나 있다. 남은 담배다.
그는 떠나기 1년 전쯤 갑자기 담배를 끊었다. 어찌나 갑작스러운 금연이었던지 당시 피우던 담배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는 나를 처음 만나기 전부터도 담배를 피웠고, 내 인생에 그보다 오래된 인연이 글이라면 그의 인생에 나보다 오래된 인연은 담배였던 셈이다. 그러던 담배를, 그는 무슨 쓰던 물건 내다 버리듯 어느 날 갑자기 슬그머니 끊었다. 내게조차 말을 하지 않아서 나도 한 일주일 정도 그가 담배 끊은 것을 몰랐다. 요즘 담배가 많이 줄은 것 같다는 말을 꺼냈을 때 줄인 게 아니고 끊었고 일주일째 한 대도 안 피우고 있다는 말을 듣고서야 나는 그가 담배를 끊은 것을 알았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 그는 이런 식으로 담배를 계속 피우다가는 정말로 내 몸이 버티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게 아닌가도 싶다.
아무튼 그래서, 그가 피우다가 말아버린 담배는 거의 새 갑 그대로, 그의 책상 한 켠에 남아 있다.
담배뿐만이 아니다. 그가 담배를 피울 때 재떨이 대용으로 썼던 뚜껑 달린 알루미늄 커피캔들도 몇 개나, 그의 책상에는 고스란히 남아 있다. 물론 그 속은 텅 비어있고(담배를 끊은 지 1년이나 지났으니까) 그 깡통들은 그가 쓰던 물건이라는 의미 외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 그래도 나는 그것들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는, 그냥 그렇게 정 없이 다 버리지 말고 깡통 한 개 정도는 좀 남겨놔 주지 하는 이상한 생각도 한다.
다른 물건은 다 태워서 정리해도, 담배는 태우면 안 될 것 같다. 기껏 어렵게 끊은 담배를 거기 가서 다시 피우라고 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담배는, 당분간은 버리지도 쓰지도 못하는 채로 그의 책상 한 켠에 그렇게 남아있을 예정이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의 나로서는, 그게 최선이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