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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워낙에 재주가 많고 꼼꼼한 사람이어서 뭐 저런 것까지도 잘하나 싶은 것들도 잘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재주 중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단연 '좁은 공간에 많은 물건을 차곡차곡 욱여넣는 능력'을 꼽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꼼꼼하고 찬찬하다고 해서 되는 것만은 아니고 자신이 물건을 집어넣을 공간의 크기와 넓이, 집어넣을 물건의 특성 등을 실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어서 나로서는 몇 번 죽었다 깨어난대도 따라갈 수가 없는 그런 종류의 재주였다. 그래서 나는 매번 계절이 바뀔 때 좁아터진 옷장과 서랍장에 묵은 옷들을 집어넣거나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난 후 나로서는 장바구니 두 개를 써도 다 못 담을 물건들을 장바구니 하나에 용케 다 챙겨 넣는 그를 보면서 탄성을 내지르곤 했다.
그리고 그의 이런 재주가 가장 빛을 발하는 순간은, 2, 3주에 한 번씩 마트에서 주문한 물건들이 집에 도착한 날 냉장고에 신선식품들을 집어넣을 때였다.
어느 집이나 사정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냉장고 안에는 기본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는 몇몇 항목들이 있다. 새로 사 온 것들을 집어넣자고 그런 것들을 밖으로 꺼낼 수는 없다는 데서 기본적인 딜레마가 발생한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배송돼 온 물건들을 냉동실에 갈 것과 냉장실에 갈 것, 지금 당장 냉장고에 안 넣어도 되는 것 정도로 대충 나누어놓은 뒤 냉장고 앞에 버티고 서서 그걸 차곡차곡 냉장고 안에 줄 맞춰 열 맞춰 꼼꼼하게 하나씩 넣었다. 그렇게 한 20분쯤이 지나고 나면 그 많은 물건들이 다 냉장고 안으로 감쪽같이 들어가 있었다.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걸 어떻게 다 넣었느냐고 물어보면 그는 더 넣으려고 들면 더 넣을 수도 있다는 대수롭지 않은 말 한마디를 하고 자리를 떴다. 그건 참, 언제 봐도 놀라운 장면이었다. 우리는 그의 그런 일련의 작업들을 '냉장고 테트리스'라고 불렀다.
나는 그와는 정 반대여서 저런 일에 소질이 그야말로 1도 없는 편이다. 그래서 그가 있을 때의 반의 반 정도밖에 장을 보지 않는대도 마트에서 배송이 올 때마다 나는 냉장고 앞에 붙들려 혼자만의 전쟁을 치른다. 안에 들어있는 것들을 다 밖으로 끄집어낸 후에 이렇게 밀고 저렇게 밀고, 그러다가 도저히 안 돼서 몇 개는 생수나 음료수를 꽂는 칸으로 밀려 나오기도 하면서, 그렇게 억지로 억지로 냉장고 안에 물건을 쑤셔 넣는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떠나간 그의 빈자리를 느낀다.
요즘 들어 부쩍 이사를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사를 가게 되면 10년 이상 쓴 냉장고는 바꿔야 하지 않을까도. 냉장고가 커지면 내 테트리스는 조금은 쉬워질까.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사람은 주어진 대로, 그것에 맞춰서 살기 때문이다. 나는 아마 업소용 냉장고를 집에 들여놓고 살더라도 매번 냉장고 안에 뭔가를 채워 넣을 때마다 쩔쩔매면서, 그렇게 살 것 같다. 내가 그가 아닌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