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장마가 끝났다는데

-471

by 문득

어제인지 그제인지, 인터넷 뉴스에 '올해 장마가 끝났다'는 헤드라인이 뜬 것을 보고 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좀 오래된 의문이기도 한데, 과연 장마라는 것이 사람이 지금부터 장마다 한다고 시작되는 것이며 이젠 끝났다 한다고 끝나는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다. 그러나 어쨌든 기상청에서 발표하기로 올해 장마는 그렇게 끝났고 이제 당분간은 숨쉬기도 어려울 만큼의 폭염이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그렇구나. 뭐 그 정도의 느낌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여름은 그렇다. 봄이 끝날 무렵부터 슬금슬금 더워지기 시작해서 아 이제 여름이구나 할 무렵 장마가 와서 비가 화끈하게 한 1, 2주 정도 오고, 태풍이 두세 개쯤 지나가고, 그러고 나서는 깔끔하게 더운 날이 또 한 1, 2주쯤 이어지고, 여전히 덥지만 그 정도는 아닌 날이 또 한 1, 2주쯤 이어지고, 그러다가 정신을 차려보면 슬금슬금 찬바람이 불기 시작해서 아 이제 여름이 갔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그런 계절이었다. 그런데 요즘 여름은 사뭇 그렇지만은 않은 느낌이다. 좀 경계가 흐려진달까. 꽤나 일찍부터 덥기 시작하고, 비가 오는 기간도 장마에 집중되지 않고 좀 분산돼서 시도 때도 없이 비가 온다는 느낌이고, 물러갈 때도 어딘가 맥아리 없이 슬그머니 물러간다는 그런 느낌. 하기야 그의 말대로 요즘은 봄이 한 달 가을이 한 달, 나머지 열 달을 반반 갈라서 다섯 달이 여름 다섯 달이 겨울이라면 다섯 달 내내 그렇게 비가 오고 더워서야 날씨로서도 할 짓이 아닐 테니 그렇게 푹 퍼지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지 않겠나도 싶다.


어쨌거나 올해 장마도 많은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고 그렇게 끝난 모양이다. 그러나 정작 나는 장마가 끝났다는 그 기상청의 발표를 들은 이후로 몇 번이나 해가 나는 하늘 아래 미친 듯이 쏟아지는 소나기에 기겁해 비명을 지르며 창문을 닫으러 온 집안을 뛰어다녔다. 그제도 그랬고 어제도 그랬다. 하기야, 기상청에서는 장마가 끝났다고 했지 소나기도 안 온다고는 안 했으니 이건 그 말을 맥없이 믿어버린 내가 잘못일지도 모르겠다.


'장마'라는 말이 현재 우리나라의 여름 강우를 설명하는 말로 적합하지 못하며, 그래서 '우기'라는 말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는 뉴스를 얼마 전에 읽은 기억이 있다. 우기라니. 그거야말로 학교 다니던 시절 세계지리 시간에 배운 쾨펜의 기후 구분에 의거해 열대 우림 기후 이런 데서나 쓰던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다가, 정말 내가 죽기 전쯤엔 우리나라 웬만한 지역에서도 바나나와 망고가 자라고 커피가 열리는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장마는 끝났지만 '2차 우기'가 있고, 더 많은 비가 올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은 기억도 난다. 이래서야 장마가 끝난 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이냐 싶기도 하다. 우리 사는 게 어쩌면 다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8ad71c1ede8f1956a90bd41c1307ae77-33.pn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엎어진 김에 쉬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