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당근"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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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그의 차는 2005년식 소나타였다. 나는 그가 그 차를 처음 뽑아서 시트에 붙은 비닐도 뜯지 않은 채 차를 보여주러 왔던 것을 기억한다. 많은 남자들이 대개 그러하듯 그 또한 차를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했다. 그는 운전을 잘했고, 내가 그의 곁에서 그의 차를 같이 탄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그에게 일어난 접촉사고 서너 건은 죄다 상대방 과실이었다. 이건 내 말이 아니라 보험사의 말이니 틀림없을 것이다. 무튼 그는 운전을 잘하는 만큼 스스로 웬만큼 차도 잘 돌보는 편이었으며, 그래서 이젠 시세도 잘 안 나오는 그 차를 그래도 이리저리 요령껏 참 잘 몰고 다녔다.


그러나 그렇게 차를 아끼고 돌봐도 나이를 먹는 건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인지 겨울이 되면 차는 어김없이 배터리가 퍼져 시동이 걸리지 않는 이슈로 그를 애먹였다. 그의 보험사 긴급 출동은 대부분 그런 경우에 쓰였다. 그는 이 일로 못내 스트레스를 받아했고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는 날이나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차 시동 걱정을 하느라 하루를 다 보내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가 내게 쇼핑몰 링크 하나를 보내부며 봐보라고 했다. 뭔데, 하고 들여다보니 자동차 점프 스타터를 하는 데 쓰는 일종의 보조배터리였다. 세상에 요즘은 이런 것도 파는구나. 결국 내가 먼저 사자는 말을 꺼냈다. 차가 오래돼서 그런 거면 차를 바꾸기 전에는 답이 없는데 솔직히 저 차 지금 당장 바꿀 건 아니잖아. 이거 한 돈 10만 원 하는 모양인데 대여섯 번만 써도 본전은 뽑겠다. 그는 의외로 순순히 내 말에 설득되어 그 스타터를 사는데 동의했다. 그리고 그렇게 산 스타터를, 우리는 그 해 겨울에 두어 번 정도 유용하게 썼다. 정말로 거짓말처럼 시동이 걸리는 걸 보고 어린애처럼 신기해하던 그 얼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그 겨울이 끝난 그해 봄부터 그는 운전을 하지 않게 되었고, 그로부터 꼭 1년이 지난 후 그런 식으로 내 곁을 떠나갔다.


며칠 전 방 청소를 하다가, 어딘가에 처박아두었던 그 스타터를 찾았다. 아, 맞다. 이런 거 있었지. 나는 좀 멍한 기분으로 그 스타터를 바라보았다. 이제 우리 집엔 차도 없고, 이 스타터를 쓸 사람도 없다. 이러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마음을 고쳐먹고 면허를 따고 차를 살 수도 있겠지만 그게 지금 당장은 아닐 것 같았다. 하는 일도 없는 이 집에 계속 붙들어두는 것도 거의 새것이나 다름없는 이 녀석에게 어째 좀 미안한 생각이 들어 나는 그 스타터의 사진을 찍어 중고물건 파는 앱에 올렸다. 연락은 금방 왔고, 거래도 금방 잡혔다. 나는 동네 도서관 앞으로 나가서 나오신 분에게 스타터를 넘겨드리고 5만 원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의 첫 "당근"이었다.


그의 옷이며 신발이며 심지어 피우던 담배까지도 하나도 정리하지 못했으면서 그 스타터는 그렇게 선뜻 처분해 버릴 생각이 났던 건, 그게 그의 손때가 그렇게까지 많이 묻은 물건이 아니어서 그럴 수 있었던 게 아닌가도 싶다. 그래서 그 "당근"한 5만 원으로는 뭘 할까. 삼겹살이라도 사다가 혼자만의 고기파티라도 할까. 그런 생각을 하다가, 그만 또 씁쓸해지고 만다. 이젠 정말 뭘 해도 혼자구나 하는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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