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되는 만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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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그가 떠나가고 근 1년간, 내 인생에는 그야말로 적막만이 있었다. 이것은 나쁜 뜻이기도 하지만 좋은 뜻이기도 하다. 내 인생이 그렇게 평온하다 못해 무료했던 적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의 보호(아마도) 아래서, 지난 1년을 그야말로 멍하게,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혼자된 나 자신에만 집중하며 살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기간은 아마 올해 초로 끝난 모양이다. 올해 1월 말을 기점으로, 내 인생에는 작년 한 해 내 사정을 봐주느라 잠시 머뭇거리던 것 같던 일들이 일시에 터져 나와 나를 괴롭히고 있다. 그 일들 중 완전히 해결된 것은 한 건 정도뿐이다. 덕분에 나는 못내 스트레스를 받았고, 실은 지금도 받고 있는 중이다. 가만히 있다가도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되어서, 하던 일들을 팽개치고 그에게 달려가 나 좀 도와 달라고, 혼자 그렇게 좋은 데로 내빼서 나 몰라라 구경만 하고 있으면 장땡이냐고, 나더러 도대체 어떻게 살라고 그러고 도망갔냐고 강짜 아닌 강짜를 부렸다. 그러지라도 못했더라면 나는 지금쯤 뭔가 사달을 냈을 것이다.


그렇게 반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며, 나는 조금씩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다.


그는 그냥, 불과 1년 전까지 나와 똑같던 평범한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이 그곳에 간다 한들 뭔가 큰 일을 벌일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래야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느라 옆에서 달려오는 오토바이에 신경을 못 쓰는 내 주의를 잠깐 돌아오게 한다든가 오늘 나갈 일이 있는데 비 오는 시간을 몇 시간 뒤로 미룬다든가 하는 아주 작고 사소한 것 정도가 아닐까 하고. 그러니 그에게 왜 이런저런 일 때문에 내가 힘든데 나를 도와주지 않느냐는 강짜를 부리는 것이 얼마나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겠는가 하고. 그냥, 산 사람의 일은 산 사람이 알아서 하자고. 되는 만큼만 하고, 안 되면 뭐,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그렇게.


'한꺼번에 깔끔하게, 딱 두 번 볼 필요도 없이' 해결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일이라면 진작 그렇게 했을 것이다. 내 사정이, 내 형편이 그런 게 가능하지 않으니 지난 반년 간 그토록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오지 않았겠는지. 그래서 오늘부터는 거기서마저도 한 번 더 내려놓기로 한다. 어차피 인생은 마라톤이다.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이라면 아주 오래 싸 짊어지고 가면서, 조금씩 풀어갈 수밖에 없다고.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는 내가 아주 조금은 철이 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의 곁에서라면 어쩌면, 평생 나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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