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의 아수라장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게 세상에 과연 존재하긴 할까 싶다. 그래서 그도 나도 어떻게든, 남들 다 같이 부산 떨며 움직이는 그 시간만은 피해보자고 일평생 온갖 잔머리를 굴리며 살았다. 아주 일찍 나서던지, 아니면 조금 늦게 나서던지. 이야, 여기 출퇴근 시간에 오면 죽음이겠다. 그는 어딜 가든 차 많고 길 막히는 곳에서는 그런 말을 자주 하곤 했다.
나 역시도 그런 그의 곁에서 함께 다니던 버릇이 들어 어지간하면 출퇴근 시간만은 피하고자 하는 버릇이 들었다. 다만 문제는 내가 사는 곳이 현재 서울 시내가 아니라는 것이고, 그래서 출퇴근 시간을 피한 임의로운 시간에 미팅 등 약속을 잡았다가는 그야말로 한번 나갔다 오는 데 하루종일이 소모된다는 데 있다. 그러나 그런 걸 모르지도 않으면서도 나는 차라리 하루 종일을 까먹었으면 까먹었지 그 끔찍한 출퇴근 길에 시달리는 것만은 어떻게든 피해 가고자 무던히 애를 써 왔다. 그러나 사람 사는 것은 언제나 마음대로 안 되기 마련이고, 그래서 오늘 나는 아침 아홉 시 반에 잡힌 미팅을 하러 집에서 일곱 시쯤에 나가야 하는 초유의 사태에 직면했다. 도대체 몇 년 만인지 얼른 셈도 되지 않을 정도다.
나는 되도록이면 지하철을 잘 타지 않는다. 학교에 다닐 때 4년 내내, 하루에 두 시간씩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좀 질려버린 탓도 있고 지하철 특유의 답답한 공기가 싫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버스를 타는 편이다. 그러나 오늘은 그런 선택의 여지조차 없다. 집에서 일곱 시에 나가서, 아홉 시 남짓까지 약속 장소에 도착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 지하철이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오늘은 그간 어떻게든 피해 다니려고 용을 쓰던 것들에 죄다 딱 걸리는 기분이라 영 뒤통수가 얼얼하다.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왕 이렇게 된 것, 한낮의 찌는 듯한 더위 속을 돌아다니는 것은 면했으니 다행이라고나 생각해야겠다. 요즘은 아침부터도 덥긴 하지만, 그래도 점심때 무렵의 그 내리쬐는 햇살에 감히 비교할 정도는 안 될 테니까. 그리고 오늘은 달도 바뀌었으니 그를 만나러 봉안당에라도 다녀와야겠다. 가서 오늘 내가 아침부터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바깥의 날씨는 얼마나 더운지, 출퇴근 지하철은 얼마나 밀리는지 그런 거나 실컷 하소연하고 와야겠다. 오늘은 주인이 하루 종일 집에 없을 예정이니 에어컨 바람도 못 쐴 꽃들에게 얼음물을 주고, 선풍기라도 틀어놔 주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