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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갑작스레 더워진 요 며칠 텔레비전을 일부러 꺼놓고 있다. 디스플레이에서 나오는 열이 상당하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때문인데, 기분 탓인지 모르지만 좀 덜 더운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컴퓨터의 모니터는 하는 일 때문에 잘 때 외에는 당체 꺼놓을 수가 없으니 텔레비전이라도 좀 꺼놓는 게 집 안의 온도를 전체적으로 낮추는 데 뭔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텔레비전을 켜지 않고 사나흘 정도를 살아본 바, 의외로 텔레비전을 꺼놓고도 사람은 살아갈 수 있었다. 당연한 말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텔레비전을 꺼놓고 견디는 것이 영 불가능하진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슬그머니 지금 결제를 걸어놓은 OTT의 몇몇 정액제 프로그램들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작년에 그가 갑작스레 떠나고 나서 내게 생긴 이상한 증세 중의 하나는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공중파 프로그램을 보지 못하게 된 것이다. 뭔가 나름의 이유가 있기는 하겠거니 생각하지만 정확히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마 시간이 흘러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그런 이상한 증세를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하고 짐작만 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한 케이블 예능 채널의 정액제를 결제하고 그 채널에서 방송되는 온갖 예능프로그램들을 하루종일 틀어놓고 그 속으로 도피했다. 작년 11월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내내 그랬다. 그러던 것이 이젠 아직 공중파까진 아니어도 일부 예능 프로그램 정도는 틀어놓고 견딜 수 있게끔까지 조금은 나아졌다. 그래서 요즘은, 그 정액제를 거의 이용하지 않고 있다.
이쯤 되면, 해지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주 비싼 돈은 아니나마 한 달에 일정액의 돈이 꼬박꼬박 결제되고 있다는 것도 낭비인데.
그러나 늘 느끼는 것이지만 뭔가를 끝내는 것에는 뭔가를 시작하는 것보다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사귀는 것보다 헤어지는 것에, 구독하는 것보다 해지하는 것에, 물건을 사는 것보다 그 물건이 내게 필요 없음을 인정하고 내다 팔거나 버리는 데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이제 그 정액제 그만 해지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대충 두세 달째 하고 있으면서도 결국 해지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가 도대체 뭘까를 생각해 본다. 막상 해지하고 나면 또 아쉬워지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마음이 드는 것이 가장 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누구에게나 필요 없어져서 버리려고 생각했던 물건이 버리고 난 후에 아쉬워져서 아 그때 그거 버리지 말 걸 하고 후회한 순간이 한 번쯤은 있으니까. 그러나 그 고작 한 번의 순간을 위해 잘 보지도 않는 채널의 정액제를 계속 유지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다. 뭐 어쩌면, 이젠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난 사람을 여전히 마음에서 놓아 보내지 못하는 것도 그런 심리의 일종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거라면, 난 아마 그 정액제를 꽤 오랫동안 해지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