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접지가 불량한 스탠드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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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몇 년 전 그와 나는 책상에 둘 집게형 스탠드를 하나씩 샀다. 어두우면 불 켜면 되지 스탠드씩이나 필요하냐던 말이 오가던 것이 무색하게 우리는 그 스탠드를 매우 요긴하게 썼다. 없었을 땐 어떻게 살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시간이 몇 년 지나며 스탠드는 슬슬 애를 먹이기 시작했다. 그의 스탠드는 전구를 꽂는 소켓 쪽에 문제가 있었고 내 스탠드는 스위치의 접지 쪽에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똑같이 불이 들어오지 않아도 그는 램프를 뺐다가 다시 꽂았고 나는 스위치를 몇 번 껐다가 켜고를 반복했다. 재미있는 것은 둘이 동시에 말썽을 일으키는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점이다. 지들도 아는 거지. 둘이 동시에 파업하면 내다 버리고 새로 살 거라는 거. 그런 이야기를 하며 웃었었다. 그렇게 살살 달래 가며 쓸 수는 있었지만, 어쨌든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말썽을 부리는 스탠드는 우리의 골칫거리 중 하나였다. 스탠드를 새로 사는 것 또한 그와 나의 많고 많은 위시리스트 중 몇 번째인가를 차지하고 있는 항목이었다.


그러던 중에 그는 떠났고 이제 그 위시리스트는 이제 언제나 실행될지 알 수 없는 곳까지 흘러가 버렸다.


그의 스탠드가 일으키는 문제는 아주 심플했다. 켜지거나, 켜지지 않거나. 그래서 일단 램프를 몇 번 꽂았다 뺐다를 해서 불이 켜지면 그때부터 한동안은 말썽을 일으키지 않았다. 그러나 내 스탠드는 조금 달랐다. 잘 켜져 있다가 갑자기 꺼져버린다거나 멀쩡하게 잘 켜져 있다가도 깜빡거리며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한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좀 섬뜩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거나 그가 집을 비운 날 새벽 때 아니게 스탠드 불이 혼자서 깜빡거리면 가끔은 좀 심각하게 오싹한 기분이 들곤 했다.


요즘도 내 스탠드는 눈치 없이 자주 깜박거린다. 스탠드가 깜박거리면 나는 예전처럼 짜증을 내는 대신 사진 속의 그에게 말을 건다. 왜. 이거 이렇게 하지 말라고? 저거 저렇게 하라고?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응, 알았어. 그런 말들을 하며 스위치를 몇 번 껐다가 켠다. 그래도 계속 깜박거리면 조금 짜증을 낸다. 아, 오빠. 쫌. 몇 년 전에 그와 함께 보던 드라마에 사랑하던 사람이 죽고 나서 마치 그가 아직도 살아서 곁에 존재하는 듯이 느끼고 생각하는, 소위 헛것을 보는 여자 캐릭터가 나온 적이 있었다. 아마도 스탠드가 깜빡일 때마다 그에게 말을 거는 나도 누가 곁에서 지켜보면 그녀와 별로 다를 것 없이 보일 것 같기도 하다. 이러다가 슬슬 정신을 놓는 건가 하는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라도 내 곁에 있는 그를 다시 볼 수 있는 거라면 지금보단 그쪽이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아주 가끔이지만.


어쩌면 나는 생각보다 잘 버티고 있는 중인 게 아니라 그저 실감을 하지 못하고 있는 중일 뿐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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