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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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막바지 휴가철이다. 세상은 연일 뒤숭숭하지만 그래도 이 더운 날씨에 안 챙겨 먹고 지나가면 또 섭섭한 것이 휴가이기도 하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랬듯이 내게는 딱히 정해진 휴가라는 것이 없다. 매인 데 없이 일하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이럴 때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을 그도 나도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휴가철 조금 전이나, 혹은 조금 후에 며칠 짬을 내 잠시 바깥에 다녀오는 것으로 휴가를 갈음하곤 했다.


요즘 나는 휴가를 간 두 지인 분이 올리시는 사진 보는 재미에 빠져 있다. 한 분은 오키나와로, 한 분은 내 고향인 부산으로 가셨다. 부산이야 또 워낙 바다로 유명하지만 빵집에 가면 있는 약식 비슷한 빵 이름으로나 알고 있던 오키나와의 바다가 그렇게 예쁜 줄은 처음 알았다. 두 분의 SNS에는 연일 바다 사진과 하늘 사진이 올라온다. 나는 그 사진들을 컴퓨터 모니터로 커다랗게 띄워놓고 한첨이나 넋을 놓고 바라보곤 한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지금 나를 붙드는 이 모든 번잡한 일상을 잠시 벗어던지고 어디 먼 곳으로 훌쩍 여행이라도 온 듯이, 그런 기분이 살짝 들기도 한다.


꼭 휴가철이 아니더라도 그는 여기저기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천성이 집순이인 나는 그의 그런 성격을 이해하지 못했고 심지어는 상당히 못마땅해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렇게 어찌어찌 간 여행지에서도 그도 나도 사진 찍는 것을 딱히 좋아하지 않아 둘이 얼굴을 붙이고 찍은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다. 지금 생각하니 그 모든 것이 후회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조금이라도 더 여기저기 다니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많이 만들어놓을 걸, 하는. 물론 후회는 언제나 늦게 하기에 후회인 법이다.


8월 15일이 지나면 바깥의 날씨가 얼마나 덥든 귀신같이 바닷물이 차가워져서 함부로 들어가 수영을 하기 어렵게 된다고, 그래서 해수욕장이 대부분 8월 15일에 폐장하는 거라고 부산에 살 때 들은 이야기가 있다. 8월 15일이라고 해봤자 이제 겨우 열흘도 채 남지 않았다. 날은 연일 푹푹 찌고 이 여름 도대체 언제나 가나 싶겠지만 역설적으로 이렇게 연일 날이 더우니 이 여름이 끝날 날도 그리 멀지는 않았다는 뜻이 되지 않을까. 아직 휴가를 못 가신 분들이 계시다면 '바닷물이 차가워지기 전에' 근처 바닷가라도 짬 내서 다녀오시기를 바란다. 나는 뭐, 여전히 집구석에 앉아 지인 분들이 올려주시는 이국의 바다 사진으로 만족할 생각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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