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당신에게

노란 꽃은 언제나 옳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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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날씨는 연일 체감온도가 35, 6도를 넘나드는 폭염가도를 질주 중이다. 온도가 36도쯤 되면 사람의 체온과 크게 차이도 없는데 사람이 정온 동물인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 정도로 더운 날씨다.


사람도 견디기 힘들어 연일 헉헉거리는 이 더운 날씨에, 뿌리도 없이 잘린 줄기만 물에 박은 채 제 생명을 이어가야 하는 꽃들에게는 그만큼 더 가혹한 환경일 것이 분명하다. 요즘은 사 오는 꽃들 족족 일주일을 버티면 아주 선방한 것이다. 국화도 장미도 딱 리미트가 일주일이었고 그 시기를 넘기면 바껕쪽의 꽃잎부터 마르기 시작해서 목부터 꺾여 숨을 거뒀다. 날씨가 이렇게까지 더우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한다.


자주 가는 꽃집은 지난주 내내 문을 닫았다. 꽃 도매 시장이 지난 한 주 통째로 하계휴가라, 그 참에 같이 휴가라고 한다. 예전이라면 왜 "사람 불편하게" 다 같이 쉬느냐고, 좀 돌아가면서 쉬면 안 되는 거냐는 뭐 그런 생각을 했을 법도 하다. 그러나 눈곱만큼 머리가 굵어진 지금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하계휴가라는 걸 영영 찾아먹기 힘든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아주 많다는 걸 안다. 이왕 쉬시는 김에 다들 푹 쉬셨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오랜만에 집 근처 마트의 화훼 코너에 꽃을 사러 갔다. 꽃 도매 시장이 문을 닫아 납품처가 몰린 탓인지 이번주에는 다른 때에 비해 유독 구색도 많고 꽃들 상태도 좋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송이가 제법 실하게 영근 소국도 있었고 서너 가지 색깔의 장미도 있었고 딱 한 번 사 본 후로는 웬만해서 손이 가지 않는 수국도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뭘 사갈까 두리번거리던 내 눈에, 메리골드가 들어왔다. 그런데 색깔이 한 종류가 아니었다. 작년 10월쯤 내가 사 왔던 메리골드는 그야말로 쨍한 노란색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옆에 색깔이 조금 엷은, 레몬 색 메리골드가 있었다. 아. 저걸 사가야겠다. 다른 꽃은 더 둘러볼 것도 없이 그냥 그렇게 결정하고 말았다.


집에서 마트까지는 걸어서 대강 10분 정도가 걸린다. 날씨가 이렇게까지 기승맞지만 않다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걸어가도 좋을 거리겠지만, 어제의 날씨는 너무 뜨거웠고 너무 더웠다. 나는 비닐에 대충 감싸인 이 꽃들이 그 10분의 시간 동안 어떻게 되기라도 할까 봐 제 풀에 조바심이 나서 있는 힘껏 종종걸음을 치며 집에 왔다. 그리고 땀에 젖어 척척해진 옷도 채 갈아입지 않고 부랴부랴 얼음 몇 조각을 넣은 꽃병에 꽃대를 잘라 꽂고는 에어컨 바람이 잘 드는 그의 책상 앞에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대답이 없을 것을 알면서도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괜히 말을 건다. 덥진 않은지. 물은 모자라진 않는지. 고생스럽겠지만 잘 좀 버텨줘라, 하는 인사까지.


레몬 색의 메리골드는 샛노란 색에 비해 화사한 맛은 좀 덜하다. 그러나 볼 수록 은은하게 사람의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그런 맛이 있다. 그러게, 노란 꽃은 대개 언제나 옳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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