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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 먹어야만 맛있는 음식이라는 것도 물론 있을 테다. 그러나 여름에 먹어야만 맛있는 음식이 훨씬 더 뚜렷하고 선명하게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살얼음이 사박사박 낀 메밀국수, 슴슴한 평양냉면, 새콤한 초계국수 등이 준부 그렇다. 그리고 그 여름 계절메뉴 라인업에 빠지면 섭섭한 것이 역시 콩국수다.
사실 나는 콩국수를 그렇게까지 좋아하진 않았고 있으면 먹는다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그리고 여름에 입맛을 돋우기 위해 먹는 다른 찬 면요리들에 비해서는 가장 선호도가 떨어지는 편이었다. 그러나 그는 콩국수를 무척 좋아했고, 그래서 여름만 오면 그 콩국수를 어떻게든 만들어서 먹겠다는 나름의 의욕에 불탔다. 그러나 그렇게 노력한 것 치고 아웃풋은 늘 노력한 것만큼 나오지 않아서, 옆에서 보기에도 좀 딱한 노릇이었다.
그리고 몇 년 전 한 대기업에서 '간단하게 끓여 먹을 수 있는' 콩국수 제품을 출시함으로써 그 몇 년에 걸친 콩국수 재현 노력은 결국 사람이 아무리 노력해 봐야 대기업의 자본과 기술을 못 따라간다는 다소 허무한 결말만을 남기고 끝이 났다.
끓여 먹는 법도 퍽 간단했다. 아침에 일어나 가루를 분량의 찬물에 갠 후 냉동실에 넣어놓고 잊을만하면 한 번씩 저어서 얼지 않도록 해준 후에 점심을 먹을 때쯤 면만 끓여 찬물에 헹궈서 얼려놓은 콩국물을 부으면 그걸로 끝이다. 오이와 방울토마토를 조금 썰어서 얹고, 입맛에 따라 설탕이나 소금을 조금 타서 먹으면 된다. 경상도 사람인 그와 나는 처음에 전라도 쪽에서는 콩국수에 설탕을 탄다는 말을 듣고 기겁을 했지만 시험 삼아 타먹어 보고는 역시 음식은 전라도라는 고향을 등진 배신자 같은 발언을 하며 설탕을 타 먹게 되었다. 그렇게 설탕 약간, 그래도 고향에 대한 의리로 소금도 약간 타서 맛있게 한 그릇을 먹으면 끝이다. 그는 이 콩국수 제품을 무척 마음에 들어 했고, 그래서 여름이 오면 꼭꼭 사다 놓고 입맛 없는 날 비장의 무기로 쓰곤 했다.
그러나 이건 그가 있을 때의 이야기고, 나는 근 2년째 이 콩국수를 구경도 하지 못하고 살고 있다.
이 콩국수는 네 개 들이인 주제에 가격은 다른 라면들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조금 비싸다. 즉 가격적인 경쟁력이 현격히 떨어진다는 뜻이다. 그리고 콩국수에는 밥을 말아먹을 수가 없기 때문에 '한 끼를 때우는' 용도로도 조금은 부적합하다. 미친 듯이 좋아하지도 않는데, 이런 것을 제값을 주고 사다 놓는 것에 나는 번번이 회의하게 된다. 그래서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도 여름이 절정에 다다른 지금까지 콩국수를 사다 먹지 못하고 있다.
장 볼 계획을 짜다가 그러고 보니 콩국수 안 먹은 게 근 2년째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이 더운 여름, 거기서는 누가 콩국수라도 한 그릇 말아 주고 있는지. 그런 생각을 한다. 뭐 이렇게 같이 먹은 것도 많아서, 눈만 돌리면 당신 생각을 하게 되는가 하는 생각도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