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분 글을 다 써놓고 프로필 페이지에 들어갔다가 낯선 표식 하나를 발견했다.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라고 적힌 연두색의 원형 배지였다. 이게 뭐지, 하고 눌러보니 세상에나. 브런치에서 나한테 뭔가 감투 하나를 씌워준 모양이다. 같이 올라 계신 다른 작가님들이 워낙 구독자도 많고 영양가 만점인 글만 연재하시는 분들이셔서 이런 청승맞은 신변잡기 따위나 매일 끄적거리는 내가 낄 자리인가 하는 생각에 조금 어깨가 움츠려 들었다.
흐려져 가는 정신을 붙잡기 위해 반쯤은 발버둥으로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가 1년 하고도 100일이 조금 지났다. 그 사이 참, 다른 곳 어디에도 털어놓지 못하는 나의 온갖 청승과 궁상과 서글픔과 체념들을 살풀이하듯 주절주절 털어놓으며 여기까지 왔다. 가끔은 이런 내용은 쓰긴 좀 그렇지 않나 싶은 글들도 있었다. 그런 것들도 미련 없이 쏟아내면서 온 것은, 이 브런치에 쓰는 글들의 제일 첫 번째 독자는 일단 나 자신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나는 가끔 이 브런치의 제일 첫 장으로 돌아가 그가 갑작스럽게 떠나버린 그날 썼던 엉망진창으로 조각나 있는 글들을 읽어본다. 그리고 1년 전의 내가 참 힘들었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한다. 그래서 죽이 됐든 밥이 됐든, 지금 이 순간까지 꿋꿋하게 살아있는 나 자신의 머리라도 한 번 쓰다듬어주고 싶은 기분이 된다.
나는 아직도 이 브런치에 오셔서 글을 읽어주시고, 라이킷을 눌러주시고, 가끔은 댓글도 남겨주시는 독자님들이 이 허름한 브런치에서 무엇을 얻어가시는지를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내게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크리에이터'라는 감투가 어울리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 조그만 배지가 살짝 부담스럽기도 하고, 이제부터라도 뭔가 좀 그럴듯한 글을 써야 하는 건가 슬쩍 뒷목이 뻣뻣해지는 감도 온다. '에세이'라는 건, 내 기준에서는 유안진 님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나 피천득 님의 '인연'처럼 정말로 글 잘 쓰는 사람이나 쓸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글이기 때문에 나 정도 되는 사람이 쓴 신변잡기가 저런 카테고리에 어울리는가 하는 생각도 한다.
그러나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동네 어귀에 네이블 한 서너 개가 고작인 손바닥만 한 가게에서 김치찌개집을 시작했고 그 점에 있어서 오가는 손님들에게 '거짓말'을 한 적은 없다. 업력이 조금씩 쌓이고 이 집은 매일 문을 열더라는 입소문이 나서 손님이 조금 는 것, 그리고 가게 입구에 이 집 김치찌개 그럴듯하게 합니다 하는 마크 하나 정도가 붙은 것을, 그 마크를 내가 조작해서 건 게 아닌 바에야 그게 내 '잘못'은 아닐 테니까. 나는 그냥 하던 대로 김치찌개를 끓여서 오가는 손님들에게 대접할 뿐이다. 애초에 고상한 요리나 깔끔한 음식을 찾으시는 분은 우리 집엔 오지 않을 테고, 그런 거라면 지금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밖에 별다른 수가 없지 않을까.
그가 있었더라면 오늘 이 일도 아침 한 나절의 자랑거리정도는 됐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아니, 아니다. 그가 없었더라면 나는 브런치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테고 480일이 넘는 나날 동안 매일 글을 쓰지도 않았을 테니 이런 일 자체가 없었으려나.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무슨 일로 무슨 생각을 하든 습관적으로 그의 일로 끝이 나는 이 버릇은, 언제쯤에나 고쳐질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