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케였던가, 장미 가시에 손가락이 찔려 패혈증으로 사망했다는 시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죽음 앞에 낫고 못한 것이 있을 리 없지만 거 참 시인에 어울리는 로맨틱한 죽음이 아닌가 생각했던 철없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 릴케가 있다면 조금 다른 사인을 택해야 할 것이다. 요즘 장미에는 가시가 없기 때문이다. 정말이냐고? 정말이다. 요즘 장미는 줄기가 그지없이 매끈하고 더러 있더라도 큰 가시 몇 개가 무슨 장식처럼 나 있을 뿐이어서 가위질 몇 번으로 어렵지 않게 다듬어버릴 수 있다. 그래서 매주 꽃을 사는 입장에서는, 뭐 편리하다면 편리하기는 하지만 어쩐지 장미라는 꽃의 한 특성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 거세돼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도 없지 않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도 다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몇 주 전의 일이다. 전북에 있는 화훼 농가들을 돕는다는 상품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6월에서 8월은 원래 화훼 산업의 비수기이고 그 와중에 꽃 도매 시장이 8월 초에 일주일 가까이 휴가를 가기 때문에(이건 나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 일주일간 판로가 막힌 꽃들을 납품할 곳이 없어진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뭐, 꽃이야 언제나 필요하니까. 그의 책상이 아니라면 내 책상에 두어도 좋으니까. 그래서 선뜻 기분 좋은 마음으로 만 원이 조금 넘는 금액을 결제해 놓고 사는 것에 쫓겨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때마침 이 태풍이 오기 전 급작스럽게 오늘 배송된다는 문자가 한 통 오더니 그날 오후 우리 집 앞에 길다란 장방형 상자 하나가 놓여졌다.
상품설명에는 분명히 스프레이 장미 열 대라고 되어 있었다. 스프레이 장미란 그간 꽃을 사러 다녀본 가락에 의하면 송이가 작은 장미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아 미니 장미가 한 열 송이쯤 오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열 대라는 말은 줄기로 열 줄기라는 말이고, 이 장미는 한 줄기당 작게는 두세 송이 많게는 네다섯 송이의 꽃이 달린 그런 장미였다. 그래서 졸지에 나는 만 원 조금 넘는 돈을 지출하고 한 30여 송이의 장미를 받은 셈이 되었다. 이 더운 날에 전북에서 여기까지 올라오려니 얼마나 고생했을까 싶어서 얼른 꽃대를 다듬고 꽃병에 꽂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아, 아직도 가시가 나 있는 장미도 있구나 하고. 이번에 올라온 녀석들은 큰 가시도 큰 가시인데 줄기 전체에 자잘한 솜털 같은 가시들이 가득 나 있어서 잘못 들면 꽤 따끔하게 아프다. 서투른 가위질로 보기만 해도 위협적인 큰 가시들을 좀 잘라내고 잔 가시들은 가위의 날로 훑어놓긴 했지만 그래도 그 기세는 만만치 않아서, 역시 아름다운 얼굴에 만만치 않은 성깔을 가진 미인을 장미에 비유하는 옛 수사가 역시 그럴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말이지만 장미의 가시는 일종의 생명력과도 관계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그간 꽃집에서 사 왔던 매끈한 장미들과는 달리, 이 녀석들은 물도 잘 먹고(꽃병의 물이 줄어드는 속도가 느껴질 정도로) 기세도 등등해서 며칠이 지났는데도 고개 숙이는 녀석 하나 없이 전원 쌩쌩하다. 그런 거라면, 꽃대를 다듬을 때 손이 더러 찔리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가시 있는 장미가 좀 더 많아졌으면 싶기도 하다. 아름다운 것의 생명이 너무 짧다는 건 언제나 너무 슬픈 일이기 때문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