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치와 방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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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나는 면허가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웬만해서는 따지 않을 생각이다. 그 이유는 물론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것이 내가 심각한 길치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길이 어떻게 해서 거기와 연결되는가 하는 것을 좀체로 잘 파악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비교적 좋은 편인 내 기억력에 의지해 아 이쯤 와서 저 가게가 보이면 대충 맞게 가고 있다 하는 식으로 길을 찾는다. 덕분에 낮에 온 길을 밤에 간다거나 밤에 가봤던 길을 낮에 간다거나 하면 초행길처럼 헤매게 된다.


그런 나를 20여 년에 거쳐 관찰한 바, 그는 조금 색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너는 길치가 아니고 방향치야. 그것이 그의 말이었다. 그 말이 맞는 건지도 모른다. 나는 유독 지하철을 거꾸로 탄다거나 버스에서 잘 내려놓고 반대 방향으로 한참이나 걸어가다가 뭔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걸 알게 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덧붙이기를, 네가 스스로 길치라고 생각하게 된 것에는 운전을 하지 않는 탓도 있을 거라고 그는 말했다. 운전을 안 하니까 어딜 가든 지하철이나 버스 노선도 위주로 생각을 하게 되고, 그래서 A 지점과 B 지점이 사실은 아주 가까운데 버스가 빙 둘러서 가는 경우에 너는 그 두 지점이 가까이 붙어있다는 걸 인식을 못하는 거지. 직접 운전을 하면 알 일인데, 그러질 못하니 그런 기질이 더 굳어지는 거라는 게 그의 말이었다. 아, 그런가. 그때는 그냥 그 정도로 생각하고 넘겼다.


말썽을 부리는 손 때문에 병원에 가던 날이었다. 물리치료까지 하려니 아무래도 시간이 애매해서 아무래도 밖에서 밥을 먹고 들어와야 할 것 같았다. 그 근처에, 뭐 밥 먹을 만한 곳이 있나 하고 나는 포털의 지도 서비스를 켜고 한참이나 그 근처를 이리저리 훑었다. 그러고 나서 매우 낯익은 가게 이름 하나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미 몇 번 말한 바 있지만 그와 나는 꽤 중증의 빵 애호가였고, 그래서 이 근방의 거의 모든 유명한 빵집들을 다 섭렵한 바가 있었다. 그 집은, 그중에서도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심지어 배달을 시킬 수도 있을 만큼― 가게였다. 물론 그가 떠난 후 나는 나 혼자만을 위해 빵을 사는 짓을 하지 않게 되었고, 그래서 마지막으로 방문한 것이 2년인지 3년인지 되는 그런 집이긴 했지만. 아니 근데, 이 집이 병원 근처에 있었다고? 나는 화성과 금성만큼이나 멀게만 생각했던 두 지점이 사실은 바로 옆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한참을 멍해 있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나는 익히 봐두었던 길 대로 대로를 따라 걸어갔다. 5분 이상이 걸렸을 리가 없다. 실로 엎어지면 코 닿을 위치에 그 빵집이 있었다. 나는 그 빵집에 들어가 슈크림빵과 소금빵 몇 개를 사서 나왔다. 세상에. 이 빵집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알기 쉬운 위치에 있었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당신이 몸 불편해 집에 있을 때 살짝 나와서, 이 빵이라도 좀 사들고 들어가서 같이 먹을 걸. 나의 그 무심함을 내가 길치 혹은 방향치이기 때문으로 돌릴 수 있을까.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나는 면허가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웬만해서는 따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나 나의 이런 결심은 그가 언제까지나 내 곁에서 나를 가려는 곳까지 태워다 줄 것이라고 믿은 그 무렵에 한 결심이다. 나의 이 오랜 결심도, 이제는 바뀌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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