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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아닌 눈다래끼 때문에 병원에 가려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언제나처럼 들른 집 앞 편의점의 유리문에 한 유명 아이스크림 브랜드 두 군데에서 출시한 아이스크림 케이크 몇 종을 이 편의점을 통해서만 예약을 받는다는 광고지가 붙어 있어서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광고지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빵을 좋아했던 그와 나에게는 빵을 사 먹는 데 있어서 지키는 몇 가지 자질구레한 수칙이 있었다. 그중에는 크리스마스에는 제아무리 빵을 맛있게 하는 빵집에서라도 케이크를 사지 않는다는 수칙이 있었다. 우리가 다녀본 그 숱한 빵집들 중 단연 케이크 하나만은 이 집이 최고라고 그와 내가 합의를 봐둔 서울의 한 빵집이 있었는데,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그 집에 빵을 사러 갔다가 무슨 빵집이 아니라 케이크 공장처럼 돌아가는 업장 내부를 보고 질겁을 했던 기억이 있다. 저렇게 '양산'되는 케이크가 평소의 케이크만큼 맛있을 리가 없고, 그러니 크리스마스 때는 차라리 대량생산되는 일정한 퀄리티의 케이크를 사 먹는 게 낫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었다. 그랬던 기억이 있어서, 그 광고지는 어째 조금 혹하는 부분이 있었다. 그중 제일 가격이 저렴한 1호짜리 작은 케이크라면 나 혼자서도 좀 먹어볼 만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장님에게 유리문에 붙어있는 저 케이크 지금 예약되느냐고 물었다. 사장님은 한참이나 포스를 뒤지시더니 내가 예약하고 싶었던 업체의 케이크는 물건이 올라와 있지 않고 다른 업체의 케이크만 올라와 있다고 대답을 해주셨다. 잠시 고민하다가, 꿩 대신 닭이라도 이거라도 예약해 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아니 잠깐만. 아 이게 물건이 안 올라와 있는 게 아니라 예약이 다 차버린 거네요. 이제 한정으로 500개씩만 예약을 받는 거라. 아니 잠깐만요. 어머 어떡해. 개수 다 차버렸어. 사장님은 머쓱해하며 웃으셨다. 그 몇 분 사이에 예약 다 차버렸나 봐요. 다 닫혔어요. 뭐 도리가 없었다. 나는 연신 죄송하다고 하시는 사장님에게 뭐 어쩌겠느냐는 말을 남기고 편의점을 나왔다.
전국 편의점에 한꺼번에 다 풀면서 500개라니, 그걸 갖다가 누구 코에 붙이느냐는 성토가 한참을 오갔다. 그냥 개수대로 예약받고 그 수량만큼 출고하면 되지 않나. 그러면 쫄리는 맛(?)이 없으니까 그러나 보죠. 뭐 어쩌겠냐고, 집에서 편하게 갖다 주는 케이크나 먹으려고 했더니 그냥 제가 알아서 사 먹어야죠. 그런 말을 했다. 간만에 신랑이랑 아이스크림 케이크나 같이 좀 먹으려고 했더니 안 되겠네요. 나는 그 말을 제법 담담하게 했다. 뭐 거짓말은 아니다. 내가 크리스마스에 무슨 케이크를 사든 나는 그 케이크를 그의 사진이 놓여있는 내 책상에서 먹게 될 것 같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