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대부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내게도 몇 개의 단톡방과 몇 개의 오픈카톡방이 있다. 오픈카톡의 경우는 조금 위치가 특이한데, 주로 인터넷에서 알게 되어 어지간한 얼굴을 아는 사람들보다 살갑게 대하면서도 정작 서로의 인적사항에 대해 깊숙이는 모르는―요컨대 서로 전화번호까지는 모르는 사이인 지인들끼리 모여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옛날 사람이라 그런지 실제 지인과 소위 '인터넷 지인'의 경우는 친밀도는 같을지라도 그 분류 자체는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 분명 있긴 하다.
그리고 나는 그 오픈카톡방 중 하나에 같이 이름을 걸치고 있는 지인 한 분과 얼마 전부터 좀 미묘한 사이가 되고 말았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가 늘 그렇듯이 이렇게 된 것은 한 사람만의 잘못이라고는 하기 어렵다. 내가 원인제공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분의 그에 대한 반응 역시 도에 지나친 데가 있었다. 다만 나는 뒤끝 길고 생각 많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아니 어쩌면 16개 MBTI 유형 중 이 부문으로는 단연 1등일 거라고 생각한다― INFP이므로, 그간 일어난 일들은 모두 차치하고라도 나의 사과에 대해 본인은 아무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는 듯한 태도로 내 사과만을 받고 본인은 사과하지 않는 그 분과 껄끄러운 사이가 되었다. 자연히 그분과 함께 이름을 걸어놓은 오픈카톡방은 내게는 매우 불편한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어제 불쑥, 난 아무래도 이 방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문득 며칠 전 브런치 메인에 '단톡방 조용히 나가기'에 대한 글이 올라와 있던 것이 기억났다. 아, 그러고 보니 좋은 기능 생겼다던 게 갑자기 생각나서 나는 인터넷을 뒤져 '카톡방에서 조용히 나가는 법'을 검색했다. 별로 어렵지도 않았다. 어차피 이런 식이라면 이름만 걸어놓고 잠수하는 것 이상의 활동은 하지 못하게 될 테고, 그러느니 그냥 지금 나가는 게 낫다. 그렇게 INFP인 나로서는 대단히 '급진적'인 결론을 내리고 카톡창을 켠 후 인터넷에서 본 대로 설정창 몇 군데를 뒤졌지만 그 어디에도 '조용히 나가기'라는 옵션은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짐짓 당황해 인터넷 몇 군데를 뒤지다가, 나는 조금 맥 빠지는 글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조용히 나가는' 기능은 일단 단톡방에서만 쓸 수 있고 오픈카톡방에서는 쓸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전하번호도 모르는 타인들끼리 모인 방에서 그런 체면치레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개발자들은 생각한 모양이라는 코멘트가 달려 있었다.
그래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조용히 사라지려는 내 계획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라면 뭘 그깟 게 걸려서 못 나가고 있느냐고, 그냥 나가면 되지 하고 심플하게 말할 것이다.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그게 네가 지금 불편한 것보다 중요하냐고. 그러나 위에서도 몇 번 적은 바 나는 생각 많고 소심한 INFP이므로 결국 나는 그 방에서 나가지 못하고, 온갖 옵션을 다 써서 그 방을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처박은 후 한숨을 한 번 내쉬고 방에서 나갈 기회를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카톡방 하나 마음대로 나가는 것도 남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세상이라니. 내가 참 어렵고 힘든 세상을 살고 있다는 걸 절감한다. 그리고 남편분은 '숙제'를 다 하셨기 때문에, 그냥 먼저 좋은 곳으로 가신 거라던 상담사님의 말씀도, 어쩌면 정말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곳에서의 그는 최소한 이런 걸로 고민을 하지는 않을 테니. 아니다. 사람 사는 데 어디나 똑같다고 했으니, 알 수 없는 노릇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