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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되면 상시로 현찰을 5천 원 정도는 가지고 다니려고 하는 편이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붕어빵이니 군고구마니 계란빵이니 하는 것들을 파는 노점이 눈에 띄었을 때 그 자리에서 사 먹기 위해서다. 이런 가게들은 요즘 의외로 찾아보기도 쉽지 않거니와 위치를 봐 놓고 다음번에 와보면 사라지거나 장사를 하지 않거나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대체할 만한 물건들(집에서 데워먹을 수 있는 붕어빵이라든지)을 요즘 많이 팔고 있긴 하지만 그렇게 사 먹는 것들은 대부분 길거리에서 사서 먹는 그 맛이 안 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꽤 오래전부터 겨울에는 현금으로 5천 원 정도를 지갑 속에 가지고 다니고 있다.
외출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초행길이어서 핸드폰으로 검색한 지도 앱에 잔뜩 신경이 쏠려 있었다. 어디서 내려서, 몇 백 미터를 걸어가서 버스는 뭘 갈아타야 하고 하는 것들. 그가 있었을 땐 이런 것에 신경을 써 본 기억 자체가 없었지만 이젠 스스로 이런 것도 챙겨야 하니까. 그렇게 한참이나, 지도앱의 검색 결과와 차내에서 방송되는 정류장 이름에 온갖 신경을 다 곤두세우고 있을 때였다.
정류장에서 할머니 한 분이 타셨다. 교통 카드를 대니 잔액이 부족하다는 멘트가 나왔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현찰 낼게. 차는 출발했고 할머니는 지갑을 뒤지기 시작하셨다. 기사양반 어떡해요. 내가 동전은 있는데 돈이 만 원짜리밖에 없어. 기사님이 뭐라고 대답했는지까지는 못 들었다. 그러나 가게도 아닌 버스에 만 원짜리를 거슬러줄 만한 돈이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지갑 속에 들어있는 '붕어빵값'이 생각난 건 그때였다.
어르신 일단 이걸로 내세요. 할머니는 내가 건네드린 천 원짜리 지폐를 받으시더니 되레 내게 만 원짜리 지폐를 주려고 하셨다. 아이고 아니에요. 이걸로 우선 차비부터 내세요. 할머니는 내가 건네드린 지폐와 지갑에서 찾아내신 동전으로 어떻게 어떻게 버스비를 맞추어 내시고는 연신 이거 고마워서 어떡해 하고 몇 번이나 새파랗게 젊은 내게 꾸벅꾸벅 고개를 숙이셨다. 그걸로도 모자라 저 뒤쪽에 자리가 났다며 서 있는 내 어깨를 두 번 세 번 두들기며 편하게 앉아가라고까지 하셨다. 아니에요. 저 조금 가면 내려서요. 그런 말들을 주고받느라 하마터면 내릴 정류장을 놓칠 뻔했다.
그래서 한동안 채워놓지 못해 3천 원만 남아있던 내 붕어빵값은, 이로서 천 원짜리 지폐 두 장만이 남았다.
겨울이 되면 상시로 현찰을 5천 원 정도는 가지고 다니려고 하는 편이다. 다른 이유가 아니라, 붕어빵이니 군고구마니 계란빵이니 하는 것들을 파는 노점이 눈에 띄었을 때 그 자리에서 사 먹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굳이 겨울이 아니라 여름이라도, 지갑 속에 현찰 5천 원 정도는 가지고 다녀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가끔 이렇게, 별 것 아닌 일로 하루종일 기분이 좋을 수 있다면 붕어빵 한 봉지를 사 먹는 것만큼이나 내게는 그날 하루에 남길 만한 좋은 일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