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아직은 사람한테 안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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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그가 잘하는 것은 여러 가지 많이 있었지만 그중 하나는 운전이었다. 여기서 운전이라 함은 단순히 차를 다루는 솜씨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운전이라는 행위를 잘 수행하기 위한 모든 소질이 전반적으로 남들보다 뛰어난 편이었다. 길눈도 밝았고 반사신경도 좋았으며 찬찬하고 조심성 많은 성품이기까지 했으니 더욱 그랬다. 내가 이 나이를 먹도록 운전면허를 따서 운전을 해야겠다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에는 그가 운전하는 것을 20년 이상 지켜봐 오면서 눈이 너무 높아져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외출을 하기 전날이면 그는 포털 서비스의 지도앱을 켜놓고 우리가 가려는 경로를 꼼꼼히 모의주행했다. 그냥 출발지 도착지만을 찍어서 지도 위에 그어지는 경로만 슥 한번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로드뷰를 켜서 일일이 따라가면서 이 갈림길쯤엔 뭐가 있고 길이 어떻게 되어있으며 몇 차선인가 하는 것들을 일일이 다 봐두었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운전 잘하면서, 그리고 길이 다 거기서 거기지, 그리고 요즘 네비가 얼마나 잘 나오는데 네비 믿고 가면 되지 그렇게 피곤한 걸 매번 해야 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면 그의 대답은 그랬다. AI 믿으면 안 돼. 걔네 이상한 데서 이상하게 멍청한 짓을 하거든. 그니까 말하자면 사람이 천재라서 암산은 막 열 자리씩 하는데 기본적인 사회생활이 안 되는 그런 거 있잖아. 그런 거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 그땐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다.


워낙에 방향치 겸 길치인 데다 이젠 나의 그런 단점을 커버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나도 요즘은 외출하기 전날 그가 하던 것처럼 포털 서비스의 지도앱에서 꼭 가는 길을 찾아본다. 물론 나는 모의주행까지는 해보지 않고, 내가 타야 할 노선과 갈아탈 정류장을 확인하는 정도에서 늘 그친다. 가급적 지하철을 타지 않고, 가급적 갈아탈 때 많이 움직이지 않는 노선을 찾아서 이 버스를 집 근처 어느 정류장에서 어느 방향으로 타서 어디쯤에 내려서 몇 번으로 갈아타고 어디서 내린다. 이 정도가 내가 봐두는 정보의 전부다.


며칠 전 초행으로 어디를 다녀올 일이 있어서 길을 찾아보는 중이었다. 목적지는 그와 종종 가던 곳이었지만 나 혼자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집 근처에서 그리 멀지 않은 편이라고 생각했지만 한 번에 가는 버스는 없었고 굳이 중간에 한 번 갈아타야 했다. 갈아타야 할 버스의 노선을 주욱 훑다가, 나는 어딘가 눈에 익은 정류장 이름을 발견했다. 그러니까, AI가 갈아타라고 지시하는 정류장에서 서너 코스만 더 오면 내가 그의 백중제를 지내라 매주 다녔던 정류장이 있었고, 거기서는 갈아탈 수 있는 버스의 가짓수가 훨씬 많았다. 뭐야. 여기서 갈아타면 되겠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나는 이런저런 조건을 추가해 두 번 세 번 다시 길을 검색해 보았다. 그러나 내가 발견한 그 길은 아무래도 검색되지 않았다.


모르긴 해도 그렇긴 할 것이다. AI가 추천하는 그 길은 내가 찾아낸 길에 비해 물리적으로 드는 시간이 짧긴 할 것이다. 그러나 AI는 아무래도 사람이 처음 가는 낯선 길에 대한 부담감이라든가 갈아탈 수 있는 버스 노선의 가짓수에 대한 선택의 폭이라든가 하는 시간 외적인 것까지를 계산할 줄 모를 테니 액면 그대로 곧이곧대로의 결과를 내놓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제야 그가 말하던 AI는 사회성 떨어지는 암산 천재와 같다던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훌쩍 가버리면, 나더러 그 못 미더운 AI한테 다니는 길을 매번 물어보고 다니라는 뜻으로 그런 거냐고, 불쑥 그렇게 물어보고 싶어졌다. 아직은 사람한테 안된다고, 자기가 자기 입으로 그렇게 말해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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