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온다구요 2

-19

by 문득

요즘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인 부산은 정말 죽어도 눈이 안 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날이 다른 곳보다 조금 더 따뜻하기도 하거니와 바다를 면해 있어 그런지 조금만 벗어난 밀양만 가도 겨울이면 꽤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눈이 부산에만은 죽어도 오지 않고 대개 쌓이지도 않는 진눈깨비 비슷한 무언가가 몇 시간 추적추적 내리다가 그치곤 한다. 그런 곳에서 생의 첫 20년을 살아서 그런가, 나는 아직도 눈을 보면 일단 하던 일을 팽개치고 창가로 달려가 한참이나 밖을 내다보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일어나 블라인드를 걷고 창문을 열었을 때 바깥이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보고 나는 일단 환성부터 질렀고 한참이나 그 눈을 쳐다보느라 어쩔 줄을 몰랐다.


사실 나의 첫눈은 이미 지난 11월에 병원의 창 너머로 지나갔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때도 이미 첫눈치고 꽤 실한 눈발이, 제법 오래 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침상에 누워 구경만 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눈보다는 오늘 내린 이 눈이야말로 내게는 올해의 첫눈으로 여겨지는 것도 사실이라 이미 1년 전에 써먹은 제목을 오늘 또 끄집어 내 달아본다.


한 며칠간 이거 좀 이상하다 싶을 만큼 따뜻했다. 영하는커녕 기온이 10도가 넘게 올라가는 날도 수두룩했고 그 어떤 날인가는 입고 나간 옷이 조금 덥게까지 느껴진 날도 있었다. 그러더니 어제쯤 비가 추적추적 오기 시작하면서 이제 꿀 다 빨았으니 고생 좀 할 각오를 하라는 듯 온도가 스산해지기 시작했고 결국 자고 일어나니 눈이 오고 있다. 오늘은 꽤 추울 예정이고 내일은 그보다 더 추워질 예정인 모양이다. 그리고 내주 내내 그간 풀어줬던 군기라도 잡을 요량인지 연일 영하권을 맴도는 강추위가 살벌하게 예보되어 있었다. 며칠에 걸쳐 굴 속으로 도토리를 주워 나르는 다람쥐처럼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사다 나르며, 다음 주는 일주일 내내 집 밖으로 한 발짝도 안 나가야지 하는 다짐을 했지만 이런 일 늘 그렇듯 그게 내 마음대로 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창밖에 보이는 하늘에는 눈발이 소용돌이를 치며 떨어져 내려 누군가가 힘껏 쥐고 흔든 거대한 스노우볼 안에 들어앉아 있는 느낌이다. 나는 또 이렇게, 그가 없는 두 번째 겨울을 맞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리고 도대체 언제까지 첫눈이 올 때마다 똑같은 제목을 달 건가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슬퍼하지 마세요 하얀 첫눈이 온다구요 로 시작되는 이 오래된 노래의 제목에 신세를 지지 않고 첫눈 오는 날 쓸 글에 제목을 붙이는 방법을 이젠 좀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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