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대로 되지 않는 굴소스

-20

by 문득

핸드폰에 예보된 바 이번주의 기온은 쳐다만 봐도 눈이 시릴 정도였다. 그에 의하면 한낮의 최고 온고조차도 영상으로 올라가지 못할 거라고 하고, 최저기온의 경우는 더 심각해서 영하 10도가 우습게 내려가는 날도 제법 있었다. 아. 나가면 얼어 죽기 딱 좋은 날씨로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며칠 전부터 나갔다 올 일들을 당겨서 미리 야금야금 해치웠다. 그래놓고 이번주 내내 집 안에 처박혀 밖으로는 한 발도 안 나갈 작정이었다. 겨울잠 자는 짐승처럼.


그러나 어제 글에도 썼지만, 사람 사는 일은 그리 마음대로 되지 않게 마련이다.


어제 내가 식단에 잡아놓은 메뉴는 중국식 게살수프였다. 이것 역시도 그가 가끔 해주던 음식 중의 하나로, 어깨너머로만 보기에도 레시피는 간단하면서도 그에 비해 제법 이국적인 맛이 나는 그런 음식이었다. 마침 날도 춥겠다, 뜨끈한 국물이 제격이겠다 싶었다. 그래서 나는 일찍부터 게맛살을 찢어놓고 파니 버섯이니 하는 야채를 썰어놓고 치킨스톡을 꺼내 놓는 등의 법석을 떨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마지막쯤에 맛을 내기 위해 굴소스를 한 스푼 넣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 집에는 굴소스가 떨어지고 없는 상태였다. 이 글을 쓰려고 브런치에 내가 쓴 글들을 살펴본 바에 따르면 그게 반년쯤 전인 지난 6월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남은 굴소스야 이리저리 잘 썼다지만 내가 또 나 하나 먹자고 새로 굴소스를 사겠느냐는 청승맞은 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바깥은 눈발이 날리고, 굳이 나가보지 않아도 춥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깟 굴소스, 그간 없이도 잘만 살았다. 그게 없다고 안 될 것도 아니고, 인터넷에는 굴소스가 없을 때 굴소스 비슷한 맛을 내기 위해서는 간장에 설탕과 맛술 액젓 등등을 몇 대 몇 비율로 섞어서 넣으면 아쉬운 대로 비슷한 맛이 난다는 둥 하는 등의 팁들이 여기저기 올라와 있었다. 그냥 이걸로 만족하려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나는 입이 한 발이나 튀어나와 집 앞 편의점으로 굴소스를 사러 나갔다. 이왕 해 먹는 것, 맛있게 해 먹어야지. 그나 할 법한 소리를 중얼거리면서.


편의점에서 사는 굴소스는 양은 적고 가격은 비쌌다. 이왕 이럴 거면 그냥 마트에 주문할 때 하나 샀으면 돈도 아끼고 양도 많았을 테니 좋았을 것을, 아무튼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한다는 말들을 한참이나 투덜거리며 나는 금방 사온 굴소스를 뜯어 한 숟갈을 썼다. 그리고 그 결과로 게살수프를 맛있게 먹고 어제 한 끼를 무사히 때웠다.


고작 반년이 걸렸다. 고작 반년만에, 나는 나 하나 먹겠다고 굴소스를 사겠느냐던 그날의 그 청승은 다 어디다 갖다 버리고 그것 한 숟갈을 쓰겠다고 이 눈까지 오는 날 우정 바깥에까지 나갔다 온 것이다. 이래 가지고서야 옛날 조선 시대 같았으면 3년상은 못 살았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는 아마도 잘했다고 생각할 거라고. 그럼. 이왕 먹을 거 맛있게 먹어야지. 내가 그것 하나는 참 잘 가르쳐 놓았다고, 그는 아마도 그렇게 생각할 거라고. 내 멋대로.


gv20000342381_1.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첫눈이 온다구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