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다 그렇지만 산지직송의 싱싱함은 상상 이상인 모양이다. 지난번 산 유찰꽃들은 생각보다 훨씬 오래 자리를 지켜줬다. 특히나 놀라운 것은 근처 꽃집에서 사 왔다가는 일주일은 고사하고 사나흘 버티면 벌써 하나둘씩 꽃대가 물러지기 시작하는 스토크가 일주일 넘게 갔다는 사실이다. 심지어는, 아직도 소국 두 대는 아직도 처음 우리 집에 온 그날이나 별반 다름없는 자태로 내 책상에 꽂혀 있어서 새삼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한다.
지난주쯤이었다. 전북 어느 화훼 농가에서 출하되는 겹백합 상품이 나와 있어서 한참이나 핸드폰을 노려보며 이걸 살까 말까를 고민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나는 얼굴이 크고 예쁜 꽃들을 사는 게 조금 무섭다. 특히나 백합의 경우는 목이 부러지는 그 마지막이 워낙 처절해 더 그런 것도 있었다. 그러나 상품 소개 페이지에 나와 있는 꽃들의 자태가 너무 예쁘고 화사해서 나는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기분으로 그 꽃을 주문했다. 그리고 그렇게 주문한 백합은 날이 한참 추워지기 전인 지난 주말쯤, 꽁꽁 포장된 채로 우리 집 앞으로 날아왔다.
겹백합은 백합과 달라서 말 그대로 몇 겹의 꽃이 피고, 한 대에 여러 송이의 꽃이 달려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포장 속에서 막 꺼낸 겹백합은 그냥 시퍼런 봉오리들만 몇 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그런 꽃이었다. 내가 아는 그 백합보다 좀 더 대가 굵고 튼튼해서 쉽사리 목이 부러지진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꽃병에 물을 담아 꽃들을 손질해 꽂아놓고 며칠간을 지켜보기로 했다. 아래 매달린 봉오리부터 꽃이 핀다는데, 이 꽃이 다 피면 과연 상품 소개 페이지에 나오는 것 같은 그런 꽃이 될 것인가의 기대를 안고.
그리고 며칠 사이, 겹백합은 하루가 다르게 봉오리를 살 찌우기 시작하더니 주말쯤부터 무섭게 피기 시작했다. 연한 핑크색의 꽃잎이 몇 겹으로 피어나는 그 자태가 워낙 화사하고 예뻐서 나는 몇 번이나 오며 가며 꽃병 앞에 발을 멈추고 그 꽃을 넋을 놓고 구경하다가 내 자리로 돌아오곤 한다. 벌써 일곱 송이가 만개했고 그만큼이나 설레는 것은 아직도 피지 않은 봉오리가 또 그만큼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이 봉오리들이 다 피어나면 얼마나 예쁠까. 요즘 그런 걸 생각하느라 나는 괜히 딱히 볼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상 근처에 가서 한참을 얼씬거리다 돌아오곤 한다.
창밖에는 며칠 전 내린 눈이 녹지 않아 고스란히 뽀얗게 쌓였고 환기 좀 하느라 잠시 창문을 연 사이 방 안의 공기는 깜짝 놀랄 만큼 차가워졌다. 바라만 봐도 마음이 얼어붙을 것 같은 겨울에 저렇게 예쁘고 화사한 꽃을 집 안에 두고 있으니 내 멋대로 아직 어디서 뭘 하는지 코빼기도 안 보이는 봄을 미리 집에 끌어다 놓은 기분이랄까. 다만 그렇다. 이 녀석은 또 마지막쯤엔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려나 하는 걱정이 아주 안 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그건 또 그 때고, 지금은 그의 책상 한쪽을 위풍당당하게 차지한 이 꽃의 호기로움에 잠시 마음을 빼앗겨볼까 한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예쁜 건 죄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