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지난 아이스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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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갑작스레 입원을 하게 된 것은 지난 8월의 어느 날이었다. 벌써 아주 오래전의 일이 된 것 같지만 올여름도 제법 더웠고 나는 그 여름을 지내느라 꽤 고생을 했었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사람답게, 나는 더위도 달랠 겸 출출한 오후에 먹을 간식 겸 해서 집 앞 편의점에서 당시에 두 개를 사면 한 개를 더 준다는 아이스크림 콘을 욕심껏 사서 냉동실에 재 놨었고 그 아이스크림들을 하나도 먹지 못한 채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다.


병원에 있는 동안 다른 걱정은 다 했지만 그 아이스크림 걱정은 별로 하지 않았다. 어쨌든 냉동실에 있으니까. 급작스러운 정전이라든지로 냉장고가 꺼지지만 않으면 상관없을 거라고, 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3개월이나 자리를 비우고, 이제 한겨울로 접어드는 목전에 바라보는 아이스크림은 못 해치운 방학 숙제만큼이나 심란하다. 저걸 다 어떡하지. 이왕 이렇게 된 것 몇 달 더 묵혀서 '제철'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그나마 집에 와서 한 두 개 정도는 먹어 없앴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정에서 냉장고, 특히 냉동실이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아이스크림은 냉동 상태에서 유통되기에 유통기한이 크게 의미가 없어 표시조차 하지 않고, 만든 지 1, 2년 안에만 먹으면 된다지만 그렇게 두어 게 먹어본 아이스크림은 어쩐지 크림이고 콘이고 좀 전체적으로 눅진눅진해져 있다는 느낌이 들어 영 찜찜했다. 지금도 그런데, 그걸 몇 달 더 묵혀 여름에 먹는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이렇게까지 추워지기 전에, 그래도 한낮이면 아이스크림 하나 정도는 먹을 만하던 그때 저거나 좀 다 먹어 없애지 않고 뭘 했을까. 그렇게 부질없이 스스로를 타박해 본다. 이번 주 들어 날씨가 훅 추워져서 가끔은 집 안에서 문을 꼭꼭 닫고 들어앉아 숨만 쉬고 있는데도 입버릇처럼 아이고 춥다 소리가 나오니, 이런 날씨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도 퍽 영양가 없는 짓으로밖에 생각되지 않기 때문에 더 그렇다.


그러나 이렇든 저렇든 간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그게 언제가 됐든 저 아이스크림을 다 먹어치우는 것밖에는 없을 것이다. 생돈 주고 산 것을 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가뜩이나 좁아터진 냉동실 한 켠을 아이스크림을 넣어놓느라 다른 걸 못 넣으면서 살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이런 문제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골치 아파질 뿐이니까. 요즘 날씨가 추워서 아이스크림을 먹을 엄두가 안 난다지만 당분간은 더 추워질 일만 남은 이번 겨울이다. 여기서 더 추워지면 추워지지 따뜻해지지는 않을 것이며, 날이 정말로 풀리는 때가 온다면 그건 최소한 서너 달은 지난 후의 일일 것이다. 그러니 내가 이 일에 대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한 치 앞도 모르고 먹지도 못할 아이스크림을 이렇게 미련하게 사다 쟁여 둔 나 자신을 구박하며 눅진해진 아이스크림을 꾸역꾸역 먹어 없애는 것 밖에는 없을 것이다.


냉장고에 남아있는 아이스크림은 총 여섯 개다. 그가 있어서 조금 도와주면 세 번이면 충분할 텐데, 나 혼자여서 여섯 번이나 눈 딱 감고 그 아이스크림을 먹어 없애야 한다. 뭐든 이렇다. 좋은 일은 반으로 쪼그라들고, 나쁜 일은 곱절로 늘어난다. 이게 다 당신이 그런 식으로 날 이 풍진 세상에 놔두고 혼자 치사하게 도망가서 그런 거 아니냐고, 애꿎은 그의 액자에 대고 눈을 흘긴다. 그런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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