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텔레비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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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텔레비전을 켜놓고 자는 버릇이 있다. 이 버릇이 생긴 연원은 약간 복잡하다. 처음엔 너무 조용한 집안이 적응이 되지 않아서, 무슨 소리든 들려야만 미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서 텔레비전을 켜놓고 자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렇지는 않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많아지고 그래서 텔레비전을 켜 놨다가 미처 끄지 못하고 잠들어버리는 것에 가깝다. 아무튼 내게는 그런 식으로 텔레비전을 켜놓고 자는 버릇 아닌 버릇이 생겼다.


통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자꾸만 새벽 네 시에서 다섯 시쯤에 한 번 깨고, 30분쯤 뒤척이다가 다시 잠들기를 집으로 돌아온 내내 계속하고 있었다. 바싹 날이 추워지고부터는 그런 짓을 했다가는 여지없이 늦잠인데도 네댓 시에 꼭 한 번쯤 잠이 깨서 괜히 화장실을 한 번 다녀오고 머리맡에 따라놓은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다시 자리에 누워 괜히 머리를 괴롭히는 잡다한 생각들에 시달리다가 늦잠이 들어 화들짝 놀라 깨기를 한동안 반복했다. 어딘가에 다녀와서 나름 피곤하다고 생각한 날도 비슷했다. 이거 도대체 왜 이런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한 가지뿐이었다. 잘 때 켜 두는 그 텔레비전 말이다. 나는 잠귀가 썩 밝거나 예민한 편은 아니어서 누가 옆에서 바스락대기만 해도 잠을 못 잔다거나 하는 성격은 아니다. 그래서 그까짓 텔레비전 쯤 켜놓고 잔다고 그 때문에 잠을 못 자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꼭 그렇지는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요 며칠 작심을 하고, 좀 정신이 가물가물하다 싶으면 미리 텔레비전을 끄고 잠을 청해 봤다. 그리고 새벽 네댓 시쯤 꼭 한 번 깨던 증상은 실로 귀신같이 없어졌다. 물론 요 며칠 날이 춥고, 얼마 전 긴히 장만한 전기장판은 너무나 따뜻하고, 그래서 아 일어나기 싫다 하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하소연을 허공에 대고 하다가 기상 시간이 1, 20분쯤 늦어지는 건 빼고.


그는 텔레비전의 예약 취침 모드를 아주 적극적으로 쓰는 사람이었다. 그는 우리가 대충 잠드는 시간을 계산해 그로부터 한 시간쯤 후에 취침 예약을 맞추고, 심지어는 켜지는 시간까지 세팅해서 그걸 자명종 대용으로 썼다. 그가 하던 걸 봐 왔으니 나라고 그렇게 못하지는 않을 텐데도 나는 그가 떠난 뒤 액정이 망가져버리는 바람에 울며 겨자 먹기로 텔레비전을 바꿨고, 급한 대로 중고를 대충 사는 바람에 리모컨이 딸려오지 않아 셋톱박스용 리모컨을 대충 설정해 텔레비전 리모컨 겸용으로 쓰고 있으며, 그래서 취침 예약 맞추는 기능을 찾기가 번거롭다는 핑계로 그걸 쓰지 않고 있다. 하긴 이래놓고 텔레비전 탓을 하는 건 텔레비전의 입장에서는 매우 억울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러니 저러니 핑계를 대 봐도 결국 답은 한 가지뿐이다. 누군가가 옆에서 다 뭐든 알아서 해 주던 버릇을 나는 아직도 채 버리지 못한 것이다. 뭐 단순히 자기 전에 텔레비전을 끄는 그것 하나뿐이겠느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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