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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간에 맞게 눈을 떴다. 전기장판의 온기는 너무나 따뜻했고―올 겨울 내가 한 모든 일중에 가장 잘한 일은 단연 전기장판을 장만한 것일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오늘은 어차피 일요일이니까 조금 더 게으름을 부려도 되겠지. 그런 생각에 한 10분쯤을, 깬 것도 아니고 자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빈둥거렸다. 아니 잠깐만. 오늘 월요일이잖아.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장이 확 달아났다. 그러게. 오늘은 쉬는 날이긴 해도 엄연히 월요일이다. 그냥 그것만으로도 자리를 털고 일어날 이유는 충분했다.
환기 좀 하려고 창문을 열다가, 나는 며칠째 얼어서 온갖 용을 써야 겨우 열리던 침대 쪽 창문이 스무스하게 열리는 걸 보고 아 날이 좀 풀렸나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바깥은 눈이 잔뜩 내려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어제 아침 비슷한 시간에 아주 얇게 바닥에 한 겹 정도 쌓인 눈을 보고 아 오늘 나갔다 와야 되는데 눈 올 거면 하루만 있다가 오지 하고 투덜거린 것에 대한 대답 혹은 반응 또는 경상도 말로 '곤조'인 듯이. 네가 하루만 있다 오라 그랬잖아. 그래서 하라는 대로 해줬는데, 뭐 불만이냐고 투덜거리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나는 한참을 웃었다.
창문을 열어놓고 침대를 정리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밤새 마른 빨래를 개는 사이 실내 온도는 3도나 떨어졌다. 덕분에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분주하다. 한참 체감 온도가 영하 20도를 찍던 며칠 전에 비해 확실히 어제만 해도 날은 좀 풀리긴 했었는데 오늘도 그렇지 않은가 생각했지만 역시나 겨울바람이 차긴 찼던 모양이다.
오늘은 크리스마스고, 내게는 큰 의미가 없긴 하지만 어쨌든 크리스마스 연휴의 마지막 날이다. 정작 크리스마스는 오늘인데 크리스마스에 할 일을 24일에 다 해버리고 오늘은 그냥 집에서 쉬는 날 정도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뭐 그건 그것대로 또 좋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한다. 온 세상의 죄를 그 한 몸으로 대속하러 온 사람이 예수님이라면, 이 쉽지 않은 인생에 치여 너덜너덜해진 불쌍하고 가련한 중생들이 24일에 신나게 놀고 당신의 생일에 그 핑계를 대고 집에서 널브러져 편안하게 쉬는 것 정도를 가지고 새삼 언짢아할 리는 없을 테니까. 때마침 이렇게 그냥 쓸데없이 나돌아 다니지 말고 오늘 하루는 집에서 쉬라는 듯 바깥에는 흰 눈도 잔뜩 왔고.
그래서, 하루만 있다가 화이트하랬더니 진짜 하루 있다가 화이트하는 거냐고, 피식 웃으며 물어본다. 그렇게 안 봤는데, 그런 것도 할 수 있는 그런 위치에 있으신가 봐. 그런 거면 화이트 크리스마스 말고 이번 주엔 로또 번호라도 한 장 물어다 줘보라고, 나는 또 그렇게 강짜를 부려 본다. 크리스마스인데 나 선물도 못 받았단 말이야 하는 나잇값 못하는 투정과 함께. 이 글을 발행해 놓고 나면 조지 마이클의 Last Christmas라도 들어야겠다. 머라이어 캐리가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로 얻는 저작권 수입만 한 해에 700억이 넘는다지만 난 아직은 조지 마이클 쪽이 좀 더 좋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