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트리의 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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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지난 주였다. 딱히 택배 같은 걸 시킨 기억이 없는데 바깥에 택배를 두고 간다는 문자가 왔다. 뭔가 하고 나가서 집어온 상자 안에는 50센티 정도 되는 조그만 크리스마스 트리 하나가 들어있었다. 보나 마나 집에서 혼자 청승 떨고 있을 텐데 크리스마스 기분이라도 내라고, 한 지인 분이 보내주신 모양이었다.


보내신 분에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걸 받은 소감은 기쁘지는 않고 '그저 그랬다'. 이유는 몇 가지 있겠지만 첫 번째로는 크리스마스라는 이 날 자체가 내게는 많이 의미가 퇴색한 탓이겠고 둘째로는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소용되는 날이 정확하게 있는 물건은 그 날짜를 지나면 어차피 치워야 하는데 그것 며칠 보자고 이걸 또 어딘가에 자리를 잡았다가 치웠다가 할 품을 생각하니 '이런 걸 귀찮게 뭐하러 보내셨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탓도 있을 것 같다. 아마 택배로 온 물건이 크리스마스 트리가 아니라 보통의 인테리어 소품 같은 거였다면 이런 애매한 기분은 들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그거야 어쨌든 내 사정이고, 선물을 받은 사람의 의무 중 하나는 인증샷을 보내는 것이라 나는 집안 적당한 구석에 트리를 세워놓고 동봉된 반짝이 전구까지 둘둘 감아 스위치를 켜 양껏 반짝거리게 민든 후에 동영상까지나 찍어서 보내신 분에게 보내드렸다. 덕분에 집안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좀 난다고, 마음 써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도 함께. 반쯤은 발린 말이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렇게 툴툴대며 꾸며놓은 트리에는 실로 좀 불가사의한 힘이 있긴 했다. 해가 지고 저녁 무렵, 집안의 커튼을 내리고 그 전구에 불을 켜놓은 트리 앞을 지나갈 때면 마음이 아주 조금 밝아지는 게 느껴졌으니까. 그건 일정 부분은 그의 책상에 꽂아둔 그 꽃들이 하는 역할과도 좀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역시나 혼자 보낸 올해 크리스마스가 그렇게까지 청승맞지 않았던 이유 중에 일부는 그래도 그 느닷없는 크리스마스 트리에도 있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그거다. 이제 크리스마스는 끝났고 저 트리를 저기 언제까지 세워두느냐 하는 점이다. 크리스마스 트리니 크리스마스가 끝난 후에는 '철거'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보통 백화점이나 큰 건물들도 이왕 세운 크리스마스 트리를 그래도 해가 바뀔 때까지는 두지 않던가 싶기도 하다. 연말까지라고 해 봐야 이번주까지가 고작이니까. 고것 며칠 더 세워놓는다고 딱히 큰일이 날 것 같지도 않고. 그 날짜 하루가 지났다고 어제까지는 그냥 예쁘기만 하던 트리가 오늘은 어쩐지 좀 스산해 보인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뭐든지 날짜가 정해진 것들은 어딘가 좀 서글픈 구석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2월 15일 아침 땡처리 상품으로 나오는 발렌타인데이 초콜릿이나, 추석이 끝나고 난 후 포장을 뜯고 단품으로 매대에 세워지는 선물세트 속의 물건들이나, 날짜가 지나버린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그래서, 그냥 눈 딱 감고 올해가 끝날 때까지는 저기 저렇게 세워 두기로 한다. 뭐, 그래봤자 이번 주까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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