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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이 있다. 그 단적인 사례 중의 하나라면 휴일날 무려 '특별편성' 씩이나 했다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 보고 싶은 것이 별로 없을 때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내 기억엔 연말도 뭐 그리 크게 다르진 않았던 것 같다. 공중파 3사가 나름 겹치지 않게 일정을 배분해서 방송하는 시상식 세 가지, 그러니까 연예대상, 연기대상, 가요대상 등 세 가지 프로그램은 한 달쯤 전부터 광고하던 것에 비해 막상 뚜껑을 따고 보면 별로 재미는 없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그래도, 설날이면 떡국을 먹고 추석이면 송편을 먹는 것처럼, 그런 프로그램들을 봐줘야 아 올 한 해가 정말로 이렇게 끝나는구나 하는 실감이 나던 것도.
그러나 그가 떠나간 후로 작년 올해, 나는 그런 시상식 프로그램들과 담을 쌓고 지내고 있다. 다른 게 아니다. 거기 나오는 면면을 내가 거의 하나도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병원에 드러누워 있는 몇 달 동안 나는 내가 '요즘 노래'에 전혀 면역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요즘 드라마'에도 담을 쌓고 지내고 있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었다. 예능쯤 돼버리면 그래도 아주 조금 낫지만(그나마 vod 같은 걸로라도 보긴 하니까) 그래도 시상식씩이나 챙겨보며 올해 대상은 누가 받아야지 하고 열을 올릴 만큼 몰입하진 못했다는 것은 매한가지일 터다. 그래도 작년엔 때 아니게 연말에 개최됐던 월드컵 덕분에 텔레비전이라도 보면서 살았던 것 같지만 올해는 그나마도 없어서, 요 며칠 나는 숫제 텔레비전에게 휴가라도 주듯 꺼놓고 플레이리스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나 들으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됐을 올해 시상식에서 누가 대상을 받았는지 모른다. 적당한 사람이 받았다 한들 내가 거기 공감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별로 적당하지 않은 사람이 받았다 한들 내가 거기에 말도 안 된다고 분개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냥 그렇게 강 건너 불 구경하듯이, 내 기억 속에 그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채로 작년 연말도 올해 연말도 또 그렇게 지나가고 있다.
연말 시상식 그것 뭐 별 건 아니다. 그깟 것 본다고 해서 내 인생에 딱히 좋은 일이 생길 리도 없고, 보지 않는다고 해도 그걸로 세상이 망할 리도 없다. 작년도 올해도 그런 것 없이도 나는 무사히 잘 살아있으니까. 다만, 그렇다. 내가 이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지 못하고 혼자 둥둥 떠서 부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 기분이랄까. 문득 시커멓게 꺼져 있는 텔레비전 화면을 보면서 뭐 좀 재밌는 거 안 하나, 하고 중얼거리다가 아 요즘 연말이라 다 시상식 하지 하는 말을 맥없이 중얼거리면서 나는 번번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내년부터는 요즘 텔레비전에서는 뭘 하는가 하는 것 정도는 좀 알면서 살아야겠다. 그런 생각을 한다. 언제까지나 vod 속에서만 살 수는 없으니까. 이러다가 정말로, 버릇으로 굳어버리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