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히 흘러가는 시간에 인간이 제 임의대로 숫자를 붙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오늘이 어제와 다르고 내일과 다른 특별한 날일 리는 별로 없다. 지구는 늘 하던 대로 태양의 주위를 돌뿐이고 계절은 언제나처럼 겨울의 한가운데를 향해 가고 있을 뿐이다. 아마 이 우주에서 오늘을 일러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고 특별한 이름을 지어 붙인 것은 오로지 인간뿐일 것이다. 그러나 그랬거나 말았거나 오늘이 2023년이라는 한 해가 영영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날이라는 것 또한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일 터이다.
올 한 해에도 내게는 많은 일이 있었다. 그가 떠나간 빈자리는 여전했고 나는 그 상실감에서 온전히 헤어 나오지는 못했으면서도 조금씩 무뎌지고 게을러지고 있는 중이다. 도대체 이런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내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 많은 밤이 있었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이러다가 이대로 그의 뒤를 따라갈 뻔한(물론 이것은 내 생각일 뿐이고 실제로는 그 정도까지 심각하진 않았다) 순간도 있었다. 그리고 어쨌든, 나는 그 모든 것을 뚫고 나와 오늘 이 자리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새해에는 뭔가 깜짝 놀랄만한 일이 생기고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마법 같은 좋은 일이 일어나 내 인생이 180도 달라질 거라는 생각은 이젠 잘 하지 않게 된다. 사람의 인생은 대개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또 오늘 같은 날의 연속이며, 지금껏 일어나지 않은 일이 갑작스레 일어날 확률은 한없이 낮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어쩌면 이미 수천 번 이상 겪은 그 범속한 하루하루를 덧대고 덧대며 쌓아 올려가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어쨌든 그게 전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이왕 그런 거라면 좀 더 열심히 살아봐야 되겠다고도. 나는 이미 작년(아직까지는) 4월의 어느 아침 내게 하늘이 무너지는 일이 생긴다 해도 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버렸고 그건 지금까지도 마찬가지니까. 세상이 끝날 때까지는 어쨌든 버틸 수밖에 없다. 비록 무심한 날들과 그 후의 비극적인 밤일지라도. 올해 초 극장을 찾았다가 올 한 해 내내 마음이 울적한 날이면 꺼내 들은 wands의 슬램덩크 TV판 엔딩곡, 世界が終るまでは의 가사 한 소절처럼.
이 남루한 브런치를 찾아주시고 들으나마나 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넋두리에 마음을 보태주시는 모든 독자님들께도 삼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올 한 해 수고 많으셨고, 내년 한 해도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