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오기 전 인천에 잠시 살았던 적이 있다. 그가 다니던 회사가 인천에 있었기 때문이다. 인천은 여러 가지 점에서 우리의 고향이던 부산과도 좀 비슷한 점이 있는 도시였고 그래서 그 몇 년간, 우리는 가진 것은 없으나마 꽤 즐겁게 지냈었다.
우리가 자주 가던 밥집 중에 한 계란말이김밥 집이 있었다. 그 집에서 취급하는 메뉴는 계란말이 김밥과 메밀우동, 메밀짜장면 딱 세 가지였는데, 어딜 가나 있음직한 이 메뉴들이 그땐 그렇게 맛있어서 그도 나도 어쩔 줄을 몰랐다. 되게 뻔한 맛인데 왜 먹을 때마다 맛있는지, 심지어는 한동안 안 먹었다 싶으면 그거 먹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드는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그 집에 가서 실컷 이것저것 먹고 나서 돌아오면서 우리는 늘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그건 우리가 인천을 떠나 서울로 간 후에도 계속되어서, 우리는 가끔 제2 경인고속도로씩이나 타고 한참을 달려서 그 별 것도 아닌 계란말이 김밥을 서슴없이 먹으러 가곤 했다.
그때만 해도 웬만해서는 찾아보기 힘들던 그 계란말이 김밥은, 요즘은 웬만한 김밥집에서는 다 하는 메뉴가 되었고 그래서 더 이상 계란말이 김밥을 먹으러 인천까지나 갈 필요는 없게 되었다. 당장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쯤 가면 계란말이 김밥을 파는 프랜차이즈 김밥집이 있다. 이 집 김밥은 안에 스팸도 넣고 치즈도 넣어서, 그리고 입 작은 내가 먹기 좋도록 조그만 크기로 말아서, 심지어 찍어먹을 수 있는 새콤달콤한 마요네즈 소스도 같이 준다. 크고, 투박하고, 속에 별 다른 게 들지도 않은 그 인천의 계란말이 김밥집보다 더 '고급진' 맛을 내는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가끔은 그 집의 투박하고 세련되지 못한 계란말이 김밥이 그립기도 하다. 물론 그건 온전히 그 계란말이 김밥이 그립다기 보다, 그 대수롭지 않은 계란말이 김밥 한 접시면 충분했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리운 건지도 모르겠지만.
오늘은 외출할 일정이 있고, 나가서 밥을 먹고 들어와야 할 것 같다. 그러자니 괜히 밥을 해서 밥통 속에 밥을 하루 이상 묵혀두기도 애매해서 그냥 어제는 마실 삼아 걸어가서 그 계란말이 김밥을 포장해 가져와서는 라면 하나를 끓여 후다닥 먹어치웠다. 세상은 이렇게 좋아지고 인천까지나 가지 않아도 계란말이 김밥도 먹을 수 있는데, 뭐가 그렇게 바쁘고 급해서 뒤도 안 돌아보고 먼저 갔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때 그 집은 아직도 영업하고 있으려나. 참고로 그 집은 우리가 인천을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번듯한 건물을 지어 가게를 이전했다. 그렇게까지나 장사가 잘 되던 집이니 그와 다니던 다른 가게들처럼 없어지지까지는 않았을 것 같긴 한데. 그런데 내가 과연 여기서 어떻게 가야 할지 가늠도 되지 않는 인천까지 그 계란말이 김밥을 먹으러 갈 일이 있긴 할까. 유리창에 뽀얗게 김이 서린 아침에,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