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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손이 컸다. 음식을 하거나 할 때 한꺼번에 듬뿍 하는 버릇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실제의 손 크기도 컸다. 게다가 건조해서 거칠어진 손끝에 극세사 같은 얇고 보드라운 질감의 뭔가가 닿는 것을 질색하다시피 싫어했다. 그래서 그는 책상에 하나, 차 안 콘솔 박스에 하나씩 핸드크림을 넣어두고 수시로 발랐다. 겨울엔 더 자주, 많이 발랐다.
반면에 나는 겨울에나 더러 바를까, 그 외의 계절에는 굳이 핸드크림을 바르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그에 비해 손 크기도 작은 편이고 핸드크림을 잔뜩 바르고 난 후의 그 눅진거리는 느낌을 싫어해서 아주 조금만 자서 발랐다는 티만 내는 편이었다. 그래서 한 번씩 같이 핸드크림을 두어 개씩 사도 내 것은 하나를 채 다 쓰지도 못했는데 그의 것은 두 개 다 바닥을 보이는 일이 자주 있었다. 그러면 나는 남아있는 여분의 내 몫의 핸드크림을 무슨 큰 인심이라도 쓰듯이 그에게 쓰라고 주고는, 어차피 내 거가 당신 거고 당신 거가 내 거잖아 하고 말하곤 했다.
나도 이제 나이를 먹어가는 건지, 혹은 그가 다 맡아서 하던 '손에 물 닿는 일'을 이젠 내가 다 하게 돼서 그런지 나도 슬슬 핸드크림 쓰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손이 미끌거릴 정도로 듬뿍 바르는 걸 싫어하는 성격은 여전하지만 예전엔 하루에 한두 번 정도나 바르고 말았던 핸드크림을 요즘은 손에 물이 닿을 때마다 습관처럼 바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핸드크림 떨어지는 속도가 예전에 비해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빨라지고 있다. 예전엔 좀 용량 넉넉한 것으로 하나를 사 두면 그 해 겨울을 넘겨 다음 해 겨울까지 가는 일도 흔했었는데.
쓰고 있는 핸드크림이 이젠 아랫부분을 쥐어짜야 조금 나오는 정도가 되어서, 이제 슬슬 새 걸 사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다가 나는 그의 책상 위에 그가 쓰던 핸드크림이 제법 많이 남아있는 것을 기억해 냈다. 유통기한을 보니 아직 기한이 조금 남아서, 그냥 새 걸 사는 대신 그냥 이걸 쓰기로 했다. 그의 물건이라 감히 건드리지조차 못했었는데. 이거 이렇게 놔두면 뭘 하겠냐고, 놔둬봐야 버리기밖에 더하겠냐고, 그냥 내가 쓰는 편이 당신한테도 좋지? 그냥 내 멋대로 그렇게 생각해 버리기로 한다.
당신 있을 때 내가 내 핸드크림 많이 줬잖아. 어차피 내 것은 당신 거고 당신 거는 내 거고 그렇잖아. 그러니까 이거 내가 좀 써도 되지? 굳이 그런 말을 중얼거려 본다. 그까짓 핸드크림, 어디 백화점에서 산 비싸고 좋은 물건도 아니고 생활잡화점에서 사 온 한 개에 2천 원짜리인데도. 그러고 보니 이젠 핸드크림도 그냥 나 쓸 것만 사면 되는구나. 이런 식으로, 또 떠난 사람의 빈자리를 실감하고 만다. 그 별 것 아닌 핸드크림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