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좋아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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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이 브런치에서 꾸준히 글을 읽어주신 독자님이라면 익히 아시고 계실 거라고 생각하지만 내게는 얼굴이 큰 꽃들에 대한 트라우마(?)가 약간 있다. 개체별로 차이는 좀 있다지만 워낙에 워낙 지는 모습이 서글프기 때문이며, 그 강도가 작은 꽃들과는 비교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꽃집에 가서 꽃을 살 때는 크고 예쁜 꽃들은 좀 접어놓고 사 오지 않으려고 드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나 그게 늘 그런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좀 더 정확히는 꽃의 선도랄까 생명력이랄까 그런 것에 일정 부분 좌우되는 모양이다. 산지에서 꽃을 키우신 분에게서 직접 꽃을 사 본 것이 네다섯 번쯤 되는데, 그 꽃들은 아주 평범하게 시들어서, 하나씩 꽃잎을 떨구면서 제 수명을 다했다. 목이 부러지거나 단숨에 꽃잎이 다 떨어져 버린다든가 꽃잎의 색깔이 바랜다든가 하는 일 없이.


앞전에 샀던 튤립의 수명이 다해갈 무렵 마침 또 같은 판매자님이 흰 백합 상품을 올려놓으셔서, 이 분의 꽃은 지난 핑크 겹백합 때 2주 가까이 눈호강을 했던 적이 있어서 믿고 샀다. 지금껏 사 본 백합들은 대개 말로가 좋지 않았지만 앞의 겹백합들은 목이 부러진다거나 하는 일 없이 그냥 평범하게 시들었으니 이번에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함께. 언제나 그랬듯 이 추운 날씨에 택배 상자에 실려 먼 길을 달려온 꽃들은 이파리만 무성한 채 꼭 닫힌 봉오리에는 시퍼런 빛이 돌아 마치 금방 사온 대파 한 단처럼도 보였다. 부랴부랴 너무 성한 이파리를 쳐내고 줄기를 다듬어서 꽃병에 꽂아 방으로 옮겼다. 그리고 2, 3일이 지나자 봉오리의 시퍼런 빛이 차츰 가시더니 하나 둘 꽃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다만 나를 심란하게 한 것은 판매자님이 함께 넣어서 보낸 쪽지였는데, 그 쪽지에 의하면 백합은 꽃이 피기 시작하면 수술을 따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꽃가루가 옷이나 이불에 묻으면 잘 지지 않기도 하거니와 꽃가루가 많이 날려 꽃의 모양이 지저분해지기도 하고, 꽃의 수명도 하루이틀 정도 더 짧아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백합을 몇 번 사 보았지만 처음 듣는 이야기인 데다가, 이 쪽지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뭘 그렇게까지나 하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이미 한 번 뿌리가 잘려서 꽃병에 꽂혀 있는 꽃들인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거기까지 생각하고 그냥 넘겼다.


그러나 하나 둘 꽃이 피기 시작하자 아무래도 그 족지에 적힌 글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결국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다. 아닌 게 아니라 많은 분들이 백합이 막 피기 시작할 무렵 다 수술을 따주고 계셨다. 개중에는 향이 너무 독하다고 암술도 잘라내는 분도 계셨다. 이쯤에서 '눈이 얇은' 나는 결국 수술 정도는 따주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오늘 아침 물을 갈면서, 반쯤 핀 세 송이의 수술부터 먼저 따냈다. 꽃가루가 묻어있던 수술의 머리 부분이 제거돼 버리고 삐죽한 대만 남은 그 모습은 어쩐지 좀 휑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내가 과연 잘한 건가 하는 찜찜한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물론 수술을 따내게 된 가장 결정적인 부분은 '꽃의 수명이 하루이틀 정도 더 길어진다'는 부분이었다. 결단코 꽃가루가 옷에 묻으면 잘 지지 않는 게 싫어서라거나 꽃가루가 묻은 꽃의 모양이 깔끔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다곤 해도, 어쨌든 꽃을 하루이틀 더 오래 보고 싶다는 욕심에 줄기 다듬는 것 이상으로 꽃에 손을 대 버린 건 사실이 아닌가. 그러니까, 결국 꽃 좋으라고가 아니라 나 좋자고 한 짓이 아닌지.


뭔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때 아니게 그런 철학적인 생각을 해본다. 이미 손을 대 버린 이상 다른 꽃들도 다 봉오리가 벌어지기 시작할 때쯤엔 수술을 따줘야 할 테고 내가 과연 잘한 건가 하는 생각을 아마도 내내 하게 될 것 같기 때문에. 언제나 그렇듯 꽃은 아무 말도 해주지 않고, 그래서 그네들의 대답을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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