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먹어도 안 죽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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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혼자 남겨진 후로 얼마간, 나는 전에 없이 먹는 것에 괴까다롭게 굴었다. 유통기한이 하루라도 지난 것들은 미련 없이 다 버렸고 채소 같은 것들도 색깔이 조금이라도 변하거나 물러진 것들은 두 번도 보지 않고 버렸다. 아마도 생각건대, 그가 하던 것만큼 깨끗하게, 깔끔하게 먹는 것들을 관리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아니었나도 싶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중요했던 이유에는 이제 내가 아프면 아무도 나를 돌봐주지 않기 때문에 괜히 수상한 걸 먹었다가 탈 나지 말자는 뜻도 있었다.


그리고 그가 떠난 지 2년이 가까워오는 지금, 나는 그런 점에서 많이 느슨해져 있다. 떠먹는 요거트 같은 것은 두 번 세 번 사러 나가기가 귀찮아 한꺼번에 묶음으로 된 것을 사 오기 때문에 매일매일 하나씩 챙겨 먹는데도 마지막 두세 개 정도는 꼭 유통기한을 넘기게 되지만 인터넷 어디선가 본 요거트는 냉장 보관만 잘했으면 일주일 정도는 괜찮다더라는 말을 들먹이며 그냥 무던히 먹고 있다. 매실청이나 드레싱 소스 같은 것들도 연도가 바뀌지 않은 이상, 이상한 냄새가 나거나 덩어리가 진다거나 하지 않는 이상 그냥 못 본 체하고 먹는 중이다. 어차피 배탈 나 봐야 내가 나지 다른 누가 나는 게 아니지 않느냐는 핑계를 대고.


그저께 밤이었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한참 정신이 없던 무렵 못 보고 지나가버린 에능 프로그램 하나를 vod로 보다가, 뜬금없이 '간장비빔국수'라는 말을 들어버린 것이 문제였다. 아, 그거 맛있겠네 하는 생각에 후다닥 레시피를 찾아보니 아주 간단한 레시피도 친절하게 공개돼 있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아마 뜯고 나서 한 번인가 밖에 쓰지 않은 소면도 집에 있을 것이고, 내일 오후쯤에 해 먹어야겠다. 뭐 그렇게 생각한 것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소면의 유통기한이 작년 9월 23일까지였다는 사실이다.


양념장까지 다 만들어놓고, 이제 면을 삶아 헹궈서 비벼서 먹기만 하면 되는 상황에 발견한 이 문제는 적이 당황스러웠다. 내가 요즘 아무리 식재료의 유통기한에 느슨해졌다지만 어느 정도지, 9월 23일이라면 좀 있으면 넉 달 전이 된다. 게다가 소면은 냉장고에 넣어두었던 것도 아니어서, 이걸 어떡해야 되나 나는 잠시 머뭇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이럴 때 만만한 건 또 인터넷이라, 나는 인터넷에 '유통기한이 지난 소면'에 대해 검색해 봤다. 역시나, 인터넷의 가장 유용한 점 중의 하나는 세상에 나 같은 인간이 나 하나만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인 모양이다.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소면의 유통기한을 넘겼고, 그리고 꼭 그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소면은 물기 없이 건조해서 생산하는 물건이라 곰팡이가 피거나 상하지도 않으니 어지간하면 그냥 먹어도 된다는 친절한 답을 해주고 있었다. 개중엔 1년 반이 지난 소면을 그냥 대충 끓여 먹었지만 하루가 지나서도 배탈이 나지 않으니 괜찮은 모양이라는 임상실험 결과(?)까지 공유해 주신 분도 계셨다. 그래 뭐. 별 일이야 있겠냐고, 나는 유통기한이 4개월 가까이 지난 그 소면을 삶아서 미리 만들어 둔 간장 양념장에 비벼 맛있게 한 그릇 잘 먹었다.


혼자 남겨진 후로 얼마간, 나는 전에 없이 먹는 것에 괴까다롭게 굴었다. 거기엔 아마도, 이젠 그도 떠나고 없는 와중에 나 혼자서라도 어떻게든 뭔가를 먹기 위해 꾸역꾸역 애를 쓰는 것 자체가 부질없이 느껴진 이유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2년 가까이가 흐른 지금, 나는 그 얼마 하지도 않는 소면 한 봉지가 아까워서 4개월이나 유통기한을 넘기고도 버리기는커녕 매일매일 비빔국수를 해 먹는 한이 있더라도 이거 어떻게든 빨리 다 먹어 없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결국 그런 식으로, 다 살아가게 마련인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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