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존재의 손 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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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나는 장갑이라는 물건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은 어딘가에 꼭 한 짝씩을 흘리고 다니는 나의 칠칠치 못함이 가장 큰 이유이겠고, 둘째로는 어딜 가서 뭘 하든 핸드폰을 만지작거려야 하는 요즘 세상에 그때마다 장갑을 꼈다 벗었다 하는 게 너무나 귀찮고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년간 나는 장갑 같은 건 근처에도 가지 않은 채,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대충 빨갛게 언 손에 입김 몇 번을 불어 주머니 속에 쑤셔박는 걸로 겨울을 나곤 했다.


그러나 올해 겨울은 이래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긴히 터치가 먹는 장갑 한 켤레를 장만했다. 이유는 다른 게 아니라. 얼굴이나 손 등 어쩔 수 없이 찬 바람에 노출되는 부분만 잘 막아도 몸이 한결 덜 춥다는 사실을 몸소 느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이것저것 좀 살 일이 있어서 집 근처 마트에라도 다녀오는 날에는, 맨손으로 가져간 장바구니를 들고 집까지 걸어오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장갑이라도 끼고 들면 좀 낫겠지. 뭐 그런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 장갑 또한 전기장판 정도는 아니어도 올 겨울에 한 꽤 현명한 소비 중 하나였다.


다만 문제는, 얼마 전부터는 집 안에 뻔히 앉아서도 손이 시려 견딜 수 없는 순간이 불쑥불쑥 찾아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나 주로 마우스를 쥐거나 하는 오른손 쪽의 손 시림이 유독 심하다. 이 손 시림은 블라인드를 내리고 하루를 마감하는 대여섯 시쯤부터 좀 심해지는 느낌이 있는데, 며칠 전에는 미니 온풍기라도 하나 사야 하나 하는 생각에 심각하게 물건 몇 가지를 찾아보기까지 했다. 이 때아닌 손 시림은, 올겨울은 내가 느끼기로는 '그렇게까지' 추운 날이 많지는 않아서 더 당혹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예전 같았으면 뻔히 집 안에 있는데 손이 왜 이렇게 시리냐고 그냥 스스로 몇 번 투덜거리고 말았겠지만 이젠 나도 슬슬 나이를 먹는다는 증거인지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온갖 말들이 가끔 떠올라 사람을 신경 쓰이게 한다. 손이 차고 저린 건 뇌졸중의 전조 증상이라든가 레이노 증후군이 뭐가 어쨌다든가 하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맞는 말인지 채 확인도 해 보지 않은 그런 말들이 불쑥 생각나 이거 병원을 가 봐야 하나 하는 생각을 심각하게 하게 된다. 온풍기를 하나 살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이제 벌써 1월 중순인데 살 거면 일찍 샀어야지 지금 사서 뭘 어쩌겠다는 거냐는 점에 생각이 미치면 그냥 슬그머니 고개를 내젓게 된다. 그래서 나는 궁여지책으로, 지인 분에게서 선물 받은 아웃도어용 장갑을 꺼내 놓고 저녁 무렵 끼고 지내고 있다.


4, 5년 전에 교통사고로 몇 달 입원해 집을 떠나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아무리 보일러를 틀어도 집안이 너무 추워서 애를 먹었다고 그가 말한 적이 있었다. 단순히 둘이 있던 집에 혼자만 있게 되니 느끼는 심리적인 이유인 건지, 아니면 실제적으로 사람의 체온이 주는 복사열이 1인분만큼 사라져 버려 그런 것인지까지는 모르겠다. 그냥, 당신도 그때 이런 식으로 추웠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남자가 돼가지고 치사하게 그걸 이런 식으로 앙갚음하냐고 그의 사진을 향해 눈을 흘긴다. 어쩔 수 없다. 당분간은, 내게 무슨 일이 생겨도 그건 다 당신이 먼저 그렇게 도망간 탓이다.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먼저 떠나랬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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