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컸으면

-50

by 문득

40년 가까이 나는 내 키가 소위 160이 조금 안 되는, 158cm 정도는 되는 줄 알고 살고 있었다. 내 키가 정확히 154cm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를 따라 병원에 다니다가, 병원 한 구석에 비치돼 있는 신장과 체중을 재 주는 기구를 이용해 본 후부터였다. 그 기구가 뽑아주는 키와 몸무게를 보고 의사들이 문진을 하니까 그 기계는 정확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고, 내가 벌써 키가 줄어들 나이에 진입한 게 아닌 이상 나는 거의 반평생을 내 키를 4cm이나 올려치기 하면서 살고 있었던 셈이었다. 한 발만 떨어져서 보기엔 158이나 154나 어차피 160도 안 되는 '난쟁이 똥자루'에 불과하겠지만 그래도 내 키가 155cm도 안된다는 사실은 내게는 한동안 퍽 충격이었다. 어쩐지, 바지 하나 사면 단이 너무 심하게 남더라 싶긴 했다.


이제 와서 연예인이라도 될 것도 아니겠고 키 크고 늘씬한 몸매 같은 것에 딱히 동경은 없다. 그런 근사한 몸을 타고난 복 받은 사람은 거의 없고, 그런 몸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먹고 싶은 걸 참고 하기 싫은 걸 참아가며 노력해야 하는지 조금이나마 알게 된 지금은 더 그렇다. 그러나 도대체가 남들 다 키 클 동안 나는 키도 안 크고 뭘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은 시시때때로 온다. 가장 비근한 예로, 어제 방의 형광등 하나가 나갔다. 사실은 주방 쪽의 형광등 하나가 나갔을 때 좀 징조가 수상하긴 했는데, 퇴원하고 몇 달 만에 돌아왔을 때부터 방 안의 불이 어딘가 침침하다고 느껴진 것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때마침 사다 놓은 형광등이 없어서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다. 그 핑계를 대고, 어제는 대충 나가지 않은 한쪽 등의 빛에만 의지해 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구매 후기의 9할 이상이 '빠른 배송'을 칭찬하는 구매처였으니 아마도 오늘 오후쯤에는 택배가 올 것이고, 그러면 나는 이 알량한 키로 도대체 뭘 어떡하면 저 형광등을 조금 더 쉽게 갈 수 있겠는지 온갖 잔머리를 다 굴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발판을 딛고 올라가 형광등만 툭 갈아 끼우면 되는 거라면 좀 낫겠지만, 이 오래된 집의 형광등에는 등마다 무겁고 두꺼운 유리 커버가 씌워져 있어 그걸 벗겨내고 다시 끼우는 것이 사실 제일 큰 일이다. 베란다 쪽 커버의 경우는 결국 끼우는 것을 포기하고 떼낸 채로 방치 중이기도 할 정도니까.


형광등의 수명이 다하는 것에는 일정한 타이밍이 있다. 그건 아마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내가 사는 루틴에 의해 닳아가는 형광등의 수명이 일정한 속도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방의 형광등이 나갔으니 아마 머지않은 시간에 거실 쪽 형광등이 나갈 것이고, 방보다 조금 더 천장이 높은 거실 형광등을 갈기 위해서는 아마 방 형광등을 가는 것보다 조금 더 큰 곤욕을 치러야 할 것이다. 정말, 남들 다 키 클 동안 나는 키도 안 크고 뭘 했을까. 뭘 하긴. 나보다 쬐끔은 키 큰 누군가가 이런 일 알아서 다 해줄 줄 알고 안 컸지. 오늘도 원망은 그의 몫이고, 사진에 대고 눈을 흘기는 것은 어김없이 나의 몫이다. 방 형광등 하나 나간 일 가지고까지 이렇게 귀먹은 욕을 먹으니, 그로서도 참 할 짓이 아니기는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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