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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인쿠폰 한 장에 눈이 멀어 광고 알람을 허용한 쇼핑채널이 벌써 몇 개나 된다. 그래서 그런 곳에서 보내는 알람은 역설적으로 뭔가를 '알린다'는 본래의 기능을 거의 상실한 채로 내용을 제대로 읽어보기도 전에 지워버리기를 반복하고 있기도 하다. 아마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어제도 비슷했다. 그렇고 그런 메시지들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지우는 중에, 나는 지금 쓰는 핸드폰의 후계 기종이 사전 판매가 시작되었다는 알림 메시지를 발견하고 잠깐 손가락을 멈추었다. 아니 왜? 혹은 아니 벌써? 정도의 느낌이었다. 나 이 핸드폰 바꾼 지 1년 정도밖에 안 된 것 같은데? 작년에 써놓았던 이런저런 기록들을 살펴보니 내가 '큰 맘을 먹고' 지금의 핸드폰으로 바꾼 것이 작년 2월이었다. 아마도 그가 없는 한 해를 어떻게든 무사히 살아낸 나 자신에게 주는 작은 포상이었던 것 같다. 그때도 사전 예약 안내를 받았던 기억이 나니까, 채 1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내 핸드폰은 이제 '한물 간' 물건이 된 것이다.
핸드폰은 아마도, 명품 같은 것에 취미가 없는 고만고만하게 사는 나 같은 사람이 일상적으로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가장 비싼 물건의 범주에 들 것이다. 물론 그렇게 비싼 값을 주고 사는 만큼 요즘 핸드폰은 제 값 정도는 톡톡이 한다. '통화'라는 본래의 용도 외에도, 당장 핸드폰이 없으면 통장의 돈을 이체할 수도, 모르는 길을 찾아갈 수도, 음악을 들을 수도 없다. 나는 아직 사용하고 있지 않지만 요즘은 핸드폰을 주민등록증 대용으로도 쓸 수 있다는 것 같으니 그 하는 일의 값어치만 따지자면 제 몸값의 수십 배 정도는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2, 3년에 한 번 꼴로 핸드폰을 바꾸는 데는 역시 금전적인 부담이 가는 것은 사실이기도 하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처음 핸드폰을 쓰던 시절부터 이 브랜드의 핸드폰만을 쓰던 터라 막연하게 후계 기종이 나오면 바꿔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던지라 갑작스레 닥쳐온 이 후계기종 판매는 내게는 좀 당황스럽게 여겨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바꾼 지 아직 11개월 밖에 안 되는―그나마 개중 서너 달은 제대로 핸드폰을 써 보지도 못한― 이 핸드폰을 두고 또 새 핸드폰을 장만한다는 건 어딘가 지금의 내 핸드폰을 배신하는 것 같은 찜찜한 느낌마저 주었다.
뭐, 어쩔 수 없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백만 원도 훨씬 넘게 주고 산 핸드폰을 1년도 채 못 쓰고 바꾼다는 건 나 같은 서민이 할 수 있는 짓은 아니다. 그래서, 이번 핸드폰은 눈 질끈 감고 그냥 못 본체, 넘어가기로 한다. 핸드폰 한 번 바꿨으면 최소한 2년 정도는 써줘야 본전은 하는 게 아니냐고. 1년 정도 더 버티면 그땐 지금 출시된 후계기종의 후계기종이 또 나와 있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