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가장 잘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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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요 며칠 집안에서도 좀 과하다 싶을 만큼 옷을 껴입고 지낸다. 기분 탓인지 뭔지 모르지만 일단 몸이 따뜻해야 손이 덜 시리다는 사실이 나름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기모 바지 정도를 입고 지내다가 그나마도 춥다는 생각이 들면 플리스 가디건까지를 껴입는다. 그리고 해가 넘어가는 오후가 되면 무릎 담요까지 덮는다. 그러고 있으면 어지간해서 손이 시리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게 정말로 효과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손이 생각하기에 이렇게까지 하는데 시리면 그건 제게 문제가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알아서 자제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옷을 껴입고 지내도 집안에 들어차는 외풍은 알게 모르게 어쩔 수가 없는 모양이다. 새벽 한 시가 조금 넘어 하던 일을 정리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30분쯤 전부터 전기장판을 켜 놓은 침대 속으로 들어가 처박히는 기분은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다. 아 따뜻해 하는 단말마에 가까운 비명을 한 서너 번 정도 지르고, 나는 거의 매일 밤 생각한다. 올해 겨울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이 전기장판을 산 것일 거라고. 물론 이 장한 전기장판 또한 거의 비슷한 크기의 물건이 몇 천 원 더 싸게 나와 있는 것을 스치듯 지나가며 본 적이 있었고, 나는 신포도를 눈앞에 둔 여우가 된 기분으로 저건 전기 효율이 안 좋거나 뭔 수가 있겠지 하는 심술궂은 말을 중얼거리며 애써 그 상품을 못 본 척하고 지나가곤 했다. 그런 몇몇 순간을 제외하면 이 전기장판은 적어도 올 겨울 한정 제 몸값의 열 배 가까이는 충분히 해주고 있다. 이 전기장판이 없었더라면 순간순간 영하 10도가 넘게 떨어지는 밤에 따뜻하게 자기 위해 이불을 겹쳐 덮거나 보일러를 올리거나 잠옷 위에 뭔가를 더 껴입고 자야 했을 것이고 그래도 뭔가가 만족스럽지 않아 온몸을 꽁꽁 웅크린 채 자야 했을 것이다. 이 전기장판 덕분에 요즘 잘 때만큼은 지금이 겨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가끔은 이불을 걷어차고 잘 때도 있을 정도니까.


다만 이 전기장판의 유일한 단점은 그거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몇 배쯤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비몽사몽 눈을 뜨고 핸드폰 시계를 한 번 확인하는 그 순간부터 이미 약간 늦잠인 경우가 많은데, 그 따뜻한 전기장판을 뿌리치고 일어나는 것이 쉽지 않아 학생 시절 엄마에게 투정을 부리듯 5분만 10분만 하며 허공에 대고 징징거리다 보면 어느새 내 아침 시간은 엉망이 되어 있는 경우가 요즘 꽤 자주 있다. 특히나 오늘 아침처럼 체감 온도가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아침은 더 그렇고.


뭐, 그건 어디까지나 내 의지 박약의 문제겠고 그냥 제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전기장판을 탓할 문제는 아니겠지 싶다. 다만 그렇다. 이 집으로 이사 오면서 우리는 전에 쓰던 전기장판을 버렸고 그 후로 10년이 넘도록 전기장판 따위 쓰지 않고도 10년 이상의 겨울을 잘만 지냈다. 그땐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었던 걸까. 그냥, 그땐 지금보단 조금은 젊었으니까 가능했던 걸까. 그는 아마도 답을 알고 있겠지만 별로 내게 말해 줄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이왕 전기장판 샀으니 그냥 그거 잘 쓰면 되지. 사진 속의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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