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까지 인터넷으로 사버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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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본의 아니게 단골이던 꽃집에 발을 끊은 지가 좀 된다. 벌써 몇 주째 인터넷으로 꽃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화훼 농가를 돕는다는 그 취지에 나도 한 다리 끼어볼까 하는 나름의 순수한 선의였다. 그렇게 배달돼 온 꽃은 풍성하기도 했고 싱싱하기도 했다. 그렇게 산 겹백합에, 튤립에 재미를 들이고 나는 혹시나 또 농가 돕기 상품이 오픈되지 않는가 하는 마음에 숫제 알림을 설정해 놓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런 상품이 늘 내 입맛에 맞는 타이밍에 열리는 것은 아니었고, 그래서 지난주쯤엔 어쩔 수 없이 꽃을 사러 나가야만 하는 순간이 왔다.


여느 때였다면 그나마 온갖 신경을 다 써서, 그나마 덜 춥고 눈이나 비가 오지 않는 날을 골라 집에서 15분쯤 걸어가야 있는 꽃집까지 가서 꽃을 사서는, 집까지 돌아오는 그 15분 동안 이 아름답고 연약한 생명이 이 춥고 차가운 겨울바람에 얼어 죽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집으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는 대신, 이번에도 인터넷을 뒤져 적당한 제철 꽃다발 상품을 주문하는 것으로 그 모든 노고를 대신했다. 그런 결과 우리 집에는 안개꽃이 섞인 프리지아 한 단이 배달돼 왔고, 지금 그 녀석들이 지난주까지 만발하게 피었던 백합들이 떠난 자리를 대신해 그의 책상을 지키고 있다.


생각건대 인터넷으로 꽃을 주문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위에도 썼듯이 집까지 걸어오는 그 15분 동안 꽃을 무사히 잘 가지고 돌아오는 것 자체가 꽤나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이번주처럼 연일 체감 온도가 영하 20도 가까이를 육박하는 때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며, 일전처럼 눈이 오고 난 후 길이 얼어붙은 날이어도 그 꽃을 손에 쥐고 집에서 꽃집까지를 왕복할 엄두가 나지 않기도 할 것이다. 인터넷으로 사는 꽃은 이런 모든 단계를 친절하게 다 알아서 해주고, 나는 집에서 택배를 받아 편하게 꽃을 다듬어 꽃병에 꽂아주기만 하면 된다. 나로서야 한결 편하고 좋은 프로세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핑계를 대고 며칠에 한 번씩이나마 집 밖에 나가던 것이 이젠 그나마도 줄어버려, 그야말로 짐점 더 집순이가 되어간다는 기분도 없지 않아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는 건 물론 쉽고 편하다. 결제해 놓은 물건의 배송을 기다리는 설렘도 나름 삶의 소소한 기쁨 중의 하나다. 그러나 하다못해 꽃은 좀. 직접 가서, 오늘은 어떤 꽃이 있는지 쇼케이스를 구경도 하고 사장님과 적당히 수다도 떨면서 그렇게 사 와야 하는 게 아닐지. 당장 인터넷으로 꽃을 사기 시작하면서 백합, 튤립, 장미 같은 '뻔한' 꽃들만을 사게 되었고 옥시페탈륨이니 스타티스니 석죽이니 공작초니 하는 얼마 전의 나는 이름조차 모르던 '새 꽃'들을 사 오는 빈도는 눈에 띄게 줄었다. 네가 꽃을 사는 이유 혹은 재미 중의 적지 않은 부분이 잘려져 나가 버린 셈이다.


산다는 건 어느 정도는, 쉽고 편한 것과 재미 혹은 즐거움을 맞바꾸는 거대한 하나의 과정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또, 이제 슬슬 은퇴가 가까워오는 프리지아를 대신할 장미 한 단을 인터넷으로 주문해 놓고 이번 꽃은 언제나 오려나 하는 생각 끝에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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