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식으로 무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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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사람의 생체시계라는 건 참 놀라운 것이어서, 나는 대개 아침에 눈을 뜨면 반사적으로 핸드폰 시계를 보기 전부터도 이미 대충 지금 몇 시쯤은 됐겠다는 것을 짐작한다. 그리고 그 어림짐작은 대부분의 경우 약간의 오차는 있으나마 맞는 편이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이미 알았다. 아, 늦잠 아주 제대로 잤구나 하는 것을. 눈을 뜨고 확인해 본 시간은 자그마치 아침 9시 5분 전이었다.


뭐 물론 이유를 대자면 몇 가지 있다. 어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느라 이제 자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새벽 두 시 반도 훨씬 지난 시간이었고, 텔레비전 끄는 것을 잊어버린 덕분에 다섯 시쯤 한 번 깨서 한 시간 이상을 다시 잠들지 못하고 뒤척거리다가 아침 여섯 시도 넘어서야 겨우 다시 잠들었으니까.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이 시간에 눈을 뜬 건 그가 떠난 후 근 2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여하튼 나는 부랴부랴 일어나 늘 하던 대로 청소를 하고, 운동을 하고, 책상 앞에 앉았다.


평소에 뭔가를 진행하던 속도보다 얼추 한 시간 이상씩이 늦어졌다. 그러나 그거야 뭐, 어떻게든 하면 된다. 어차피 오늘은 시간 맞춰 어디에 가야 할 일정도, 특정한 시간까지 넘겨야 할 작업물도, 연락을 해 줘야 할 상대방도 없기 때문에 말이다. 점심 먹는 시간을 조금 늦춰 버리면 아무것도 문제 될 것은 없다. 정작 나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은 이 시간에 눈을 뜬 것이 그가 떠나간 후 처음이라는 사실이다. 그가 떠나던 날도 나는 얼추 이 시간쯤 잠에서 깼었고, 옆에 누워 있는 그가 늦잠이라도 든 줄 알고 굳이 깨우지 않고 내가 할 일들을 하고 있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도대체 참이라는 게 오지 않아 새벽 다섯 시 반 혹은 여섯 시만 되면 일어나 앉던 작년, 아니 이젠 재작년 봄을 생각한다. 그러고 있자니 2년도 아닌 고작 1년 몇 개월 만에 이렇게 감쪽같이 원래 자리로 돌아오고 난 내 생활을, 이걸 회복탄력성이 좋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무디고 둔하다고 생각해야 하는지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일어나는 것뿐만이 아니다. 한 때 프로틴 음료 서너 병 외에는 아무것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던 내 위장은 요즘 오후만 되면 자꾸만 출출하다는 신호를 보내 나를 괴롭힌다. 별 것도 아닌 텔레비전 예능 프로그램에 소리를 내 웃기도 하고 요즘은 날씨가 조금 풀리면 어디 멀지 않은 곳에 하루이틀 여행이라도 가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가끔 한다. 그리고, 이젠 그의 사진을 봐도 그리 눈물이 나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다는 말은 거짓말이겠지만 예전처럼 그냥 사진만 물끄러미 쳐다봐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눈물이 치솟아 흐느껴 우는 일은 없어졌다. 급작스레 그를 보내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찾아갔던 신경정신과에서 애도반응은 보통 한 달이라는 말을 듣고 그럼 지금 이 모든 것들이 고작 한 달짜리 감정이라는 말이냐고 중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나는 결국 그런 식으로 조금씩 마모돼 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럼 언제까지 내 얼굴만 봐도 울면서 살 생각이었느냐고, 그는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이젠 내가 옆에서 같이 놀아주지도 못하는데 혼자서라도 재미있게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맞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내 마음은 그게 아니다.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내가 벌써 이렇게 늦잠을 자도 되는 건지. 내가 벌써 이렇게 무뎌져도 되는 건지. 그럼 언제까지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그것조차 확신할 수 없는 주제에, 그래도 그렇다. 내 마음은, 아직 그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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