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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위 말하는 '맵찔이'인 편이다. 원래는 맵찔이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고 매운 것이라면 환장을 하지까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즐기는 정도는 됐었는데 매운 걸 잘 못 먹는 그의 손에 밥을 얻어먹기를 20여 년쯤 하다 보니 따라서 맵찔이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우리는 매운맛의 단계를 고를 수 있는 메뉴를 먹을 때면 무조건 1단계로 주문을 했고, 남들은 아마도 이거 뭔 맛에 먹냐고 할 그 순한 맛을 먹으면서도 연신 냅킨으로 이마를 닦고 코를 훔쳤다. 이야 1단계가 이러면 한 4, 5단계쯤 되면 너나 나는 먹다가 실려가겠다는 말은 덤이었고.
어제는 오후 여덟 시도 넘어서 급작스레 라볶이라도 해 먹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떡볶이를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그래서 원래도 떡볶이를 먹을 때는 떡보다는 같이 들어있는 라면 사리나 삶은 계란 먹는 것을 더 좋아하는 편이었다. 아마도 '떡볶이'가 아닌 '라볶이'가 정확히 땡기는 메뉴로 특정된 것은 그런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오후 여덟 시는 뭔가를 먹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번뇌할 수 있는 마지노선 비슷한 시간이다. 이때를 넘겨버려서 아홉 시가 넘어가 버리면 그때부터는 꼼짝없이 '야식'의 영역에 들어가게 되고―실제로는 큰 의미가 없을지 몰라도 내 기분 상―뭔가를 먹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 이외에도 이 야밤에 나 혼자 먹겠다고 뭔가를 만드는 행위에 대해 추가로 붙어오는 죄책감의 크기가 무시하기 힘들 정도이기 때문이다. 어제는 때마침 토요일이었고, 주말 늦은 오후에 라볶이 한 그릇쯤 먹는 게 뭐가 어때서, 라고 참 쉽고 빠르게도 나의 식탐에 굴복한 후 나는 라볶이를 끓이기로 했다.
현재 우리 집에는 오뎅도 없고 떡볶이 떡도 없다. 물론 넣자고 들면야 얼마 전 해가 바뀔 때 끓여 먹은 떡국에 넣을 떡국떡을 쓰고 남은 것이 있으니 그걸 넣으면 나름의 대침이 될 일이겠지만 상기했듯이 나는 떢볶이가 아닌 라볶이를 먹고 싶었던 것이기 때문에 그냥 이것저것 다 생략하기로 했다. 라면 끓일 때 넣는 물의 절반 조금 넘는 분량에 스프를 반만 넣고, 고추장 한 숟갈에 대충 설탕이 반 숟가락. 거기다 면을 넣고 적당히 양념이 밸 때까지 끓이면 그걸로 끝이다. 그렇게,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대충 끓인 라볶이 한 그릇을 들고 책상 앞에 앉았다. 라볶이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다만, 내 예상보다 훨씬 매웠다. 이게 정말로 매운 건지 아니면 내가 워낙에 맵찔이라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매웠다. 그래서 나는 그 알량한 라볶이 한 그릇을 먹으면서 물티슈로 몇 번이나 인중을 닦고 그 와중에 코를 훌쩍거렸다. 한 그릇을 다 먹어치우고 설거지까지를 끝낸 후까지도 입 속에 남은 매운맛이 가라앉지 않아 그 핑계로 병원에 입원하기 전 냉장고에 사다 넣어놓았던 캔맥주까지 한 켄 따서 야무지게 먹어치웠다. 뭘 했다고 이렇게까지 맵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떡국떡을 좀 넣었으면 덜 매웠을 것이다. 양파나 파, 하다 못해 냉장고 속에 든 비엔나소시지라도 몇 개 썰어 넣었으면 덜 매웠을 것이다. 그 별 것 아닌 양념을, 고작 라면 한 개 분량의 사리가 다 머금었으니 가뜩이나 맵찔이인 내가 먹기에는 턱없이 맵고 짜진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걸 아는데도 정식 식사도 아닌 간식에 나 혼자 먹자고 떡국떡이니 파니 양파니 소시지니 하는 것들을 썰고 다듬는 것은 내게는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그래서, 당분간은 계속 맵찔이로 살 수 밖애는 없을 것 같다. 라볶이가 먹고 싶을 때마다.
원래 혼자 산다는 건 이런 거야. 나 이러고 살 줄 모르고 도망갔어? 오늘도 핀잔은 그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