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하는 것에, 그렇게 요리한 음식을 내게 먹이는 것에 꽤나 진심이었던 것 치고 그에게는 앞치마가 없었다. 다른 거창한 이유는 없었고 그거 뭐 굳이 필요하냐는 정도로밖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가끔 마트 같은 곳에 마실 겸 나갔다가 하나 사볼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그 '별 것도 아닌' 앞치마의 가격이 생각보다 또 제법 비싸서 이 돈에 앞치마를 살 바엔 다른 뭔가를 산다는 기분으로 안 사고 돌아온 적도 꽤 여러 번 있었다. 그래서 먹는 것에 꽤나 진심이었던 것 치고 우리 집 주방에는 앞치마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나도 비슷했다. 내 경우는 그렇게나 밥 하는 일에 진심이었던 사람도 쓰지 않던 앞치마를 내가 뭐라고 이제 와서 사서 쓰겠나 하는 마음까지 추가로 덧붙어서 더 그랬다. 그러나 그건 또 꼭 그렇지만은 않은 점이 있었다. 나는 그에 비해 뭔가를 요리하는 것에 서툴렀고, 그래서 뭔가가 튀거나 엎질러지거나 옷에 묻는 일이 그보다 훨씬 빈번하게 일어났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마트에 마실을 나갔다가 리빙 코너에서 웬일로 자잘한 노란 꽃무늬가 박힌 앞치마를 5천 원 채 안 되는 가격에 할인해 팔고 있는 것을 보고는 두 번도 묻지 않고 사서 집으로 돌아온 것은.
뭐든 다 그렇지만 없어서 못 쓸 뿐이다. 이왕 생기면, 그래서 쓰기 시작하면 대개의 물건은 있는 게 없는 것보다 훨씬 편리하고 좋다. 앞치마 역시도 그랬다. 그걸 뭘 귀찮게 밥 한 끼 할 때마다 입고 벗고 하느냐고, 그런 생각을 안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왕 사 와서 쓰기 시작한 앞치마는 꽤 좋고, 편리했다. 일단 옷에 뭔가가 튀어 옷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스트레스가 거의 없어졌다. 물 묻은 손으로 가뜩이나 잘 열리지 않는 병뚜껑을 열거나 해야 할 일이 생길 때 손을 닦기도 편해졌다. 앞에 붙은 포켓에는 통조림따개 같은 간단한 물건을 넣어두었다가 필요할 때 바로 꺼내쓸 수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먹을 밥을 하기 위해 이렇게 진심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에게 각인된 탓인지 밥을 준비하는 시간이 좀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 앞치마는 아마도 지난겨울 내가 이렇게 저렇게 장만한 몇 가지 물건 가운데서, 몇 번 언급한 그 전기장판만큼은 아니나마 잘 산 물건 순위를 매긴다면 그다음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자존감이 높다거나 한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 생각건대 나는 스스로에게 꽤 친절하지 못한 편이고 가끔은 좀 귀찮아하기까지 하는 것 같다. 여기까지는 성격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그러나 이젠 마냥 그렇게 살 수만은 없으니까. 이제는 내가 나를 돌봐야 하니까. 그래서 매일 한 끼 먹는 밥을 준비하러 앞치마를 입고 허리 뒤로 끈을 묶을 때마다 생각한다. 오늘도 뭐든, 맛있게 잘 해서 맛있게 잘 먹어보자고. 그래서 가끔 생각한다. 이왕 살 앞치마였으면, 돈을 조금 더 주더라도 내 취향인 것으로 살 걸 그랬나,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