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은 낮잠, 밤잠은 밤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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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득

나는 잠이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꼭 그만큼이나 잠을 못 자지도 않는 성격이었다. 나는 어딜 가나, 혹은 어디에 있으나 대단히 쉽고 편하게 잘 자는 편이다. 이것은 그의 증언이기도 한데, 이런저런 이야기 좀 나누다가 조용해서 들여다보면 여지없이 자고 있다고, 그렇게 잠 잘 자는 것도 참 복 받은 성격이라면서.


그래서 잠에 대해 대단히 무던한 내 성격 상, 낮에 잔다고 밤에 잠을 못 자는 일 따위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여자들에게 흔히 밥 들어가는 배와 디저트 들어가는 배가 따로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낮에 자는 잠은 낮에 자는 잠이고 밤에 자는 잠은 또 밤에 자는 잠이었다. 낮잠은 낮잠대로 꿀맛 같고 밤잠은 밤잠대로 안 자면 살기 힘든 어떤 것이었다. 가끔 고된 외출이나 피곤에 지쳐 잠깐 낮잠 한숨을 자고 나서 아 오늘 밤에 잠 안 오겠네 하고 투덜거리는 그를 향해 누워서 자면 또 자지 뭘 잠이 안 오고 그러겠느냐는 속 편한 소리를 나는 참 잘도 했었다.


그러던 나는, 요 며칠 새 때아닌 낮잠 때문에 좀 곤욕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며칠 전 때 아니게 머리를 어지럽히는 이런저런 생각들 때문에 새벽 세 시 반도 넘어서 잠든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세 시 반이 넘어서, 그나마 매우 얕고 불안정한 잠을 자고 일어나 나는 그날 하루 종일 골골거렸고 급기야 점심을 다 먹고 치운 오후 2 시쯤 도저히 안 되겠다고, 잠깐 눈 좀 붙여야겠다고 의자를 뒤로 젖히고 한 시간쯤 잤다. 이게 문제였다. 낮에 겨우 한 시간 정도 낮잠 좀 잔 탓인지 밤에 또 잠이 오지 않았고, 다음날 나는 같은 패턴으로 계속 빌빌거렸고 비슷한 시간쯤에 또 쏟아지는 졸음을 못 이겨 잠깐 잤고, 또 밤에 잠을 잘 들지 못했다. 이런 패턴을 지금 근 일주일 이상 계속 반복 중이다.


이래서 될 일이 아니다 싶은 생각에 어제는 이를 악물고 나름 버텨 봤다. 그러나 저녁 여덟 시 가까운 시간쯤에 나도 모르게 졸아버렸다. 늦은 시간 자는 토막잠―이 시간쯤에 자는 건 더 이상 '낮잠'이라고도 부를 수가 없으니―이야말로 최악이었다. 어제 내가 잠든 시간은 새벽 네 시도 넘어서였고, 오늘도 덕분에 어김없이 선잠에 시달렸다. 이러다가 밥 먹고 치운 오후쯤엔 또 쏟아지는 졸음을 못 이기고 한 시간쯤 자버리겠지. 잠깐 이러는 거야 상관없는데 이게 패턴으로 굳어지면 안 될 텐데. 그런 걱정을 한다.


아무 데서나 잘 자고, 자도 자도 또 졸리는 건 아직 젊어서 그런 거라고 그가 말한 적이 있었다. 거 누가 들으면 저보다 한 열 살 이상은 나이 많으신 줄 알겠다고, 나는 나보다 고작 세 살 많던 그에게 한참을 이죽거렸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낮에 자고도 밤에 또 잘 자던 시절의 이야기다. 고거 낮잠 한숨 때문에 밤에 잠이 들지 않아 애먹기 시작하는 걸 보니 나도 어쩔 수 없이 나이가 들어가는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내년이면 이제 나도 그와 동갑이 된다. 이 무렵의 나이가 아마도 그런 나이인 모양이다. 그런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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